“문득 잠을 깨보니 방은 캄캄했다.
고개를 들자 베갯머리에 하얀 사각봉투가 한 개 얌전히 놓여 있다.
왠지 철렁했다.
빛날 정도로 순백색의 봉투였다. 단정하게 놓여 있다.
손을 뻗어 주우려고 하자, 헛되이 방바닥을 긁었다.
아차, 했다.
달그림자였던 것이다.
그 마굴 같은 방 커튼 틈으로 달빛이 기어들어와 내 베개 맡에
정사각형 그림자를 만들었던 것이다.
꼼짝 않고 있었다.
나는 달한테 편지를 받았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공포였다.
가만히 있지 못해 벌떡 일어나 커튼을 열고 창을 열어젖혀 달을 보았다.
달은 낯선 타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뭔가 말을 걸려다가 나는 화들짝 놀라 숨을 죽였다.
달은 그래도 모른 척하고 있다.
냉혹하고 엄격하여, 처음부터 인간 따윈 문제 삼지도 않는다.
차원이 다르다.
나는 흉측하게 우뚝 서서 쓴웃음도 아니고 부끄러움도 아니고,
그런 간단한 것이 아니어서, 신음했다.
그대로 작은 여치가 되고 싶었다.”
--다자이 오사무, <나의 소소한 일상> 중 일부
까칠하면서도 퇴폐적이고 허무주의적인 다자이 오사무.
부잣집 아들이라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했다는데, 집안의 물질적 풍요 속에서 그의 내면은 빈곤과 결핍의 상태로 인한 불안이 잠식되어 있었을까요.
그의 문장은 새벽녘의 물처럼 차갑고 서늘합니다.
손끝으로 조금만 건드려도 금이 갈 듯, 그러나 끝내 부서지지 않는 냉기처럼.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1909–1948)는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입니다. 일본 아오모리현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부터 가족과 사회에 대한 거리감을 느꼈습니다. 일본 근대문학의 가장 슬픈 얼굴이라고 평가되기도 합니다. 도쿄제국대학(현 도쿄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문학에 빠져 학업을 중단했고, 그 시절부터 자살 시도를 여러 번 했습니다.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되기도 했고, 인간관계와 사랑, 자기혐오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했습니다.
그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천재였다고 합니다.
문학으로 자기 구원을 시도했지만, 끝내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한 사람으로, 여러 번의 자살 미수 끝에, 마지막에는 연인과 함께 강물에 몸을 던졌습니다. 생의 끝자락까지도 그는 ‘살아남는 일’보다 ‘죽음의 품격’을 더 오래 고민한 사람 같습니다.
그런 그의 글에서 한밤중의 서늘한 온기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나는 달한테 편지를 받았다.”
이 문장은 공포라기보다, 외로움의 다른 이름으로 보입니다.
달빛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내리지만, 그 균등함이 오히려 잔인할 만큼 다양하게 각자의 느낌으로 해석됩니다. 그 달빛 속에서 자신만의 그림자를 본 다자이,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인간, 그러나 끝내 자신을 외면하지 못하는 인간이었을까요. 그가 말한 ‘낯선 타인의 얼굴’은 결국 내면 속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로 보입니다.
그는 달빛 속에서 자기 죄를 본 것일까요?
자신을 너무 오래 들여다본 죄?
“그대로 작은 여치가 되고 싶었다. “라니...
그가 왜 “작은 여치가 되고 싶었다”라고 했을까요.
밤에도 우는 여치의 보잘것없는 울음이지만, 그 울음 속엔 생의 끈질긴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다자이의 문장에는 그런 생의 잔불이 있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그는 세상을 향해 등을 돌렸으나, 끝내 세상으로부터 편지를 받듯 달빛을 맞이한 것이 아닐는지요.
달은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달의 침묵을 ‘답장’으로 읽었겠지요.
‘빛날 정도로 순백색의 봉투‘,
달빛 아래의 봉투는 결국 그가 평생 쓰고 싶었던 편지일지도 모릅니다.
열어볼 수도, 보낼 수도 없는 편지.
읽을수록 마음이 철렁하고, 닫을수록 여운이 남습니다.
그는 죽음 속에서 문학을 완성했고, 우리는 그 죽음 속에서 여전히 그의 생을 읽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 죄책감과 자의식이 얽힌 그의 문학은, 여전히 많은 독자들에게 ‘아픈 진실의 문장’으로 남아 있습니다.
젊은 시절 하얀 봉투 속에 담긴 백지 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가득해서 끝내 다 쓰지 못한 것이었을까요
무언가를 전하려다 멈춘 손길이었을까요,
아니면
아무 말도 전할 필요가 없음을 넌지시 암시하는 조용한 신호였을까요.
나를 당황하게 했던 무언의 문장들,
읽을 문장은 없는데도, 읽어야만 하는
아니 찾고 싶은 희망적인 메시지를 투명하게 따라가야 했던 시간.
어쩌면 상대는 침묵이라는 문장을 보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사이,
그 백지의 편지는, 그런 미묘한 경계 위에서 나를 붙들다가 그저 시간 속에서 사그라졌습니다.
달그림자가 만든 순백의 봉투에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가 본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