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보드카를 따른다.
그 맛은 한밤중에 옛 도시로 날아갈 때 느끼는 묘한 간절함과 같다.”
술을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못합니다.
술맛이란 아직도 내게는 낯설고, 마치 남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감각 같습니다.
그런데도 그 문장은 오래 머물고 있군요.
한밤중 옛 도시로 날아갈 때 느끼는 묘한 간절함.
보드카 한 모금의 맛이 그런 것이라면,
그건 아마도 인생의 어느 순간을 향한 그리움일 것입니다.
흔히
글쓰기 작법에서는 “첫 문장으로 승부하라”라고 제안합니다.
첫인상의 효과 같은 것이겠지요.
얼굴 한 번, 말 한마디, 혹은 공기 중에 스치는 분위기만으로도
우리는 그 사람이나 사물, 상황의 전부를 안 듯 단정해버리기도 하고,.
한순간에 마음이 기울이거나 닫아버립니다.
시선이 머무는 순간에 대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평균 8초 정도라고 했던가요.
하지만 지금과 같이 속도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초스피드 사회에서는
그 시간이 어쩌면 1초 정도록 줄어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국내 최대 의류회사 중 하나는 “에잇 세컨즈(8 Seconds)”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시선이 머무는 8초 안에, 합리적인 가격과 높은 품질, 개성적인 스타일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의도로 시작된 그 브랜드.
심리학의 첫인상 연구에서도 ‘초두효과(primacy effect)’와 ‘최신 효과(recency effect)’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형성된 첫인상이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지요.
먼저 들어온 정보가 이후의 정보들을 해석하는 기준이 되는 ‘맥락효과(context effect)’,
그리고 뒤에 제시된 정보에는 주의가 줄어드는 ‘주의 감소(attention decline)’ 현상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상을 형성할 때 과도한 에너지를 쓰고 싶어 하지 않는 일종의 심리적 경제성을 의미합니다.
물론, 첫인상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것은 아닙니다.
첫 만남의 순간이 강렬하더라도,
그 인상이 진실로 자리를 잡으려면 지속적인 만남과 관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결국 사람의 인상은 한 번의 8초가 아니라, 그 뒤를 이어가는 수많은 시간들이 함께 빚어내는 것입니다.
책의 첫 문장에 이어 소설은 이렇게 전개됩니다.
“동그스름한 비행기 창문 너머의 구름 사이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불빛이 찬란히 어른거린다.
그렇지.
백야의 계절이다.
은색 상공에서 점점 낮아져 밤하늘보다 더 밤하늘 같은 육지로 향하다 어느 순간
별밭으로 고꾸라지는 느낌이 든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후, 천천히 다시 뜬다.
이 도시는 지극히 익숙하면서 동시에 낯선 곳이다.
한때 사랑했던 이의 얼굴처럼..........”
주말에 『작은 땅의 야수들』로 톨스토이 문학상을 수상한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인 김주혜 작가가 2024년에 출간한 두 번째 장편소설 『밤새들의 도시』를 읽었습니다. 소설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파리를 배경으로 천재적인 발레리나의 사랑과 욕망, 구원을 그리고 있습니다. 세 도시 모두 가 본 곳이라 소설 속에 거론되는 지명들이 익숙해 읽어가면서 친근감이 들었습니다.
그 책 속의 문장들로 조금 더 들어가 보면,
“발레에서는 아주 사소한 디테일이 치명적인 문제를 만든다고 이모는 말했다.
들어보니, 이모의 ‘라일락 요정’ 의상 보디스(가슴과 허리둘레가 꼭 맞게 되어 있는 여성 상의 또는 드레스의 몸통 부분)가 너무 꽉 조였고, 점프를 할 때 어깨끈 때문에 팔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으며, 결국 발롱(몸을 유연하고 부드럽게 들어 올려 마치 부력이 있는 듯 보이게 만드는 가볍고 우아한 동작)이 전혀 안 됐다는 이야기였다. 이모가 발레단 의상실에 찾아가 수석 재봉사에게 요청했지만, 단호하게 거절당했다고 했다.
그 의상은 1890년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초연 당시의 디자인인데 고작 제2솔리스트 한 명 때문에 의상을 수정한다는 건, 두 세기에 걸쳐 발에서 발로 전해 내려온, 마치 영롱히 수놓은 태피스트리와도 같은 발레의 전통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스베타 이모에게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마린스키 극장의 금색 술이 달린 하늘색 벨벳 커튼을 마구 짓밟는 포인트 슈즈가 그려졌다.
엄마는 걱정하지 말라며 스베타 이모를 달래고, 내게는 거실로 가서 놀라고 일렀다.
나는 텔레비전을 켜고 거실 바닥에 앉았다. 옆에는 엄마가 수선을 마치고 다림질하려 모아둔 의상이 쌓여 있었다.
뉴스 프로그램이 끝나자, 텔레비전 화면에 어느 발레리나의 모습이 흑백으로 나타났다.
꼭 스베타 이모처럼 생긴 발레리나가 그 날카로운 발로 뛰어오르면서 한쪽 다리를 뒤로 쭉 뻗었다.
높이 올라간 다리는 활처럼 뒤로 휘어진 등에 스칠 것처럼 보였다.
굳이 땅을 디딜 필요조차 없다는 듯 발레리나의 모든 동작은 마치 참새처럼 가뿐하고 민첩했다.
그러나 나를 정말 사로잡은 건 음악이었다.
나는 곧장 방으로 달려가 엄마가 자투리 망사천으로 만들어준 튀튀를 갖고 나왔다.
그걸 골반에 걸치고는 ”엄마, 이모 날 좀 보세요! “라고 외치면서 화면 속 발레리나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신경을 건드릴 줄 알면서도 텔레비전의 볼륨을 높였다.
그러다 내 운을 어디까지 시험해도 될지 잘못 계산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등을 뒤로 젖히며 높이 뛰어오른 나는 엄마가 쌓아놓은 의상 더미 위에 착지하고 말았다.
발이 미끄러지면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기도 전에 엄마가 꽥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
나는 바닥에 웅크린 채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p.33-34
“너 춤추는 거 봤어. 그게 어떤 작품인지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돈키호테>라는 발레 작품에 나오는 솔로야. 네가 했던 건 키트리 점프라고 부르는 동작이란다. 지금 몇 살이지, 나타슈카?”
“일곱 살이요.” 나는 천장으로 눈을 치뜨고 내 짧은 인생에 몇 안 되는 중요한 날짜들을 곱씹으며 대답했다....
“그렇구나. 하루라도 빨리 발레 수업을 듣게 해 주라고 엄마한테 말씀드려야겠다.
여자 무용수 중에 가장 희귀한 재주를 네가 갖췄어.
무슨 말이냐면, 네가 점프 능력을 타고난 점퍼라는 뜻이야. 나탈리아 레오노바”... P.35
“동물계에서 가장 사회적인 생물은 바로 새다.
같은 종과 일절 교류 없이 밤낮으로 홀로 대양 위를 날며 최대 수년간 땅에 발 한 번 디디지 않는 앨버트로스조차 결국엔 대대로 이어져 온 서식지로, 자신이 태어난 바로 그 장소로 돌아간다... p. 64”
“모든 것은 입 밖에 내지 않을 때 더욱 강해진다. 두려움도, 슬픔도, 욕망도, 꿈도.... p.148”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우아함이, 모스크바에는 감동이 있다. 그러나 유혹을 하는 도시는 오로지 파리뿐이다. 파리에 살다 보면 도시의 구석구석이 언젠가 내 눈에 발견될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믿게 된다. 이를 테면 구불구불해진 벽으로 몇 세기가 더 늦게 지어진 이웃 건물에 기대어 세월의 무게를 버티고 있는 중세 건물, 부르주아지들이 모인 몽마르트르 한가운데 숨겨진 비밀 돌길 옆으로 나란히 들어선 작은 집들... p.312”
“결국 인생이란 모든 게 실수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 어느 것도 실수가 아니다.... p.361”
“우리는 손을 꽉 잡고, 씩 웃는다.
이 모든 것 때문에, 삶의 모든 아름다움과 비극은 ‘어떻게 될 수 있었는지’와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의 간극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내가 꼭 말하고 싶은 건, 그 간극이 대부분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p.499-500 “
책 뒤표지는,
”사랑은 누구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예술이라면 가능하다.
단 한 번의 완벽한 비상에 인생을 건 프리마 발레리나의 마지막 도약
2년 전 치명적인 사고를 당한 후 무대를 떠난 세계적인 발레리나 나탈리아 레오노바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다.
그곳에는 그를 무너지게 했던 연인들, 끝내 버리지 못한 욕망이 기다리고 있다.
자신을 가장 높이 올리고 다시 밑바닥으로 끌어내린 사람들 앞에서 그는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 길은 재기일까, 또 다른 추락일까.
<작은 땅의 야수들>로 톨스토이문학상을 받은 김주혜의 두 번째 소설 <밤새들의 도시>는 삶이라는 예술에 바친 헌사다.
시련 속에서도 끝내 품위를 잃지 않는 인간의 숭고함에 대한 비유이자, 깊은 상처를 감내할 만큼 간절한 순간을 지나온 우리 모두의 찬란한 삶에 대한 은유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발레의 화려함 이면에 있는 육체적 고통과 희생, 동료들과의 경쟁 등이 담겨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순간순간 다양한 동작의 표현을 위해 무용수들의 수없이 반복되는 연습과 그 고통, 그리고 음악과의 교류와 소통이 아름다움을 만들어 주게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나탈리아 레오노바의 내면의 대화, 그를 둘러싼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그리면서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입니다.
상담을 전공하고 상담자로 수련을 받을 때, 대상을 그냥 보는 것(see)에서 깊게 관찰하고 들여다보는 것(finding)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야 내담자의 말이나 표정보다 그의 내면에서, 그 틈에서 흘러나오는 조용한 결핍을 보게 되며 결핍이 가리키는 내담자의 욕구를 알아채라는 것이었지요.
김주혜의 《밤새들의 도시》를 읽으며, 나는 그 결핍의 무늬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불빛 아래에서 자신의 그림자와 싸우는 이들, 그들의 땀 냄새와 숨소리가 책장마다 배어 있었습니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마치 발레리나처럼 고요한 고통을 품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유연하고 단정하지만, 발끝 안쪽에는 피멍이 들어 있습니다. 그 피멍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게 감추면서도, 그 위로 다시 발을 세워 세상을 향해 돌고, 뛰고, 떨어집니다. 나는 그 모습이 서글프면서도 기품 있다고 느꼈습니다.
발레라는 것은 얼마나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예술일까요.
모든 것은 균형 위에 세워지지만, 그 균형이란 결국 아픔의 중심을 잘 감추는 기술일지도 모릅니다. 몸이 부서져야 비로소 우아해지는 세계, 실패를 숨기기 위해 웃음을 연습해야 하는 세계.
《밤새들의 도시》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절도와 절망은 바로 그 세계의 축소판처럼 보였습니다.
김주혜의 문장은 새벽 공기처럼 차갑고도 투명합니다. 그래서 더 처연하게 느껴졌습니다. 읽는 동안 나는 마치 무대 뒤편에서 무용수들의 거친 숨을 엿듣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대 위의 아름다움은 조명 아래서 반짝이지만, 그 아래엔 부러진 발톱, 흘러내린 화장, 그리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눈물이 있습니다.
나는 그 사실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리 다르지 않으니 말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발끝을 세워 하루를 버팁니다.
주저앉고 싶어도, 무대는 계속되고, 음악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끝까지 춤춥니다.
어쩌면 그것이 살아간다는 일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밤새들의 도시》는 화려한 불빛 속에서 제 몸을 태워내는 사람들의 초상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 속에서 묘한 희망을 보았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제 방식으로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인간의 몸짓.
그 몸짓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발레였고, 우리가 매일 새벽을 견디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