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꼬리는 우는 제철이 있다.
이제 계절이 아주 바뀌고 보니 꾀꼬리는 커니와 며느리새도 울지 않고
산비둘기만 극성스러워진다.
꽃도 잎도 이울고 지고 산국화도 마지막 슬어지니
솔소리가 억세어간다.
꾀꼬리가 우는 철이 다시 오고 보면 장성 벗을 다시 부르겠거니와
아주 이우러진 이 계절을 무엇으로 기울 것인가.”
--정지용 산문 <꾀꼬리와 국화> 중에서,
노란색 깃털이 눈부신, 맑고 고운 울음소리의 꾀꼬리는 겨울 동안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갔다 다시 봄이 되면 찾아오겠지요.
정지용(1902~1950?) 시인은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 개척자’라 칭해질 정도로 우리 문학사에서 비중이 높지요. 그는 192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는데, 한국 시에 ‘언어의 음악성’과 ‘형상의 순수함’을 불어넣은 인물로 평가됩니다. 그의 대표작인 〈향수〉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시로,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라는 구절로 시작하지요. 그 시에는 고향을 잃은 근대인의 그리움, 사라져 가는 순수한 세계에 대한 애틋함이 서려 있습니다. 섬세한 이미지와 정제된 언어의 사용은 일상의 잔잔한 풍경도 시 세계 속에서 승화되어 애틋하고 고요하게 번지고 있습니다. 그의 생애에 대한 평가가 순탄하지 않고 한동안 ‘이념의 금기’ 속에서 논쟁적인 주장이 전해지고 있었지만, 뒤늦게 그의 작품이 재평가되고 인정받고 있습니다. 정지용의 시를 읽다 보면, 언어의 격조와 고요한 슬픔이 함께 느껴집니다. 마치 한 사람의 생이 시처럼 맑고도 쓸쓸하게 끝나버린 것 같습니다.
정지용의 글을 읽고 있으면, 마음 한편이 조용히 데워지는 듯합니다. ‘꾀꼬리는 우는 제철이 있다’는 첫 문장이 참 곱습니다. 모든 것엔 때가 있다는, 너무나 단순하지만 잊고 지내기 쉬운 진리를 새삼 일깨워 줍니다.
계절이 바뀌고, 꾀꼬리도 며느리새도 떠난 자리엔 산비둘기만 남아 있다지요.
사람의 인생도 그런 것 같습니다.
반짝이던 시절이 지나고 나면, 다소 거칠고 투박한 것들이 대신 자리를 채우는 법이지요.
그래도 그것이 또 하나의 질서요, 자연스러운 순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괜히 숙연해집니다.
국화가 시들고 솔소리가 억세어지는 풍경 속에서, 작가는 잃어버린 것들을 그리워하면서도, 그 속에 깃든 삶의 완숙함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이 계절을 무엇으로 기울 것인가’라는 물음은, 단순히 가을의 끝을 아쉬워하는 탄식이 아니라, 저무는 인생의 한때를 조용히 받아들이는 성찰처럼 느껴집니다.
가을은 참 이상한 계절입니다.
시들고 떨어지는 게 당연한 일인데도, 그 모습이 유난히 아름다워 보입니다.
아마도 사람 마음이 그런 걸 좋아해서일 겁니다.
한창 푸르던 여름의 열기보다, 이제 다 저물어가는 빛의 온기가 더 살갑게 느껴지는 거지요.
어릴 적엔 가을이 그저 쓸쓸하기만 했습니다. 운동회 날의 먼지 냄새, 낙엽 밟히는 소리,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길가에 핀 들국화 한 송이. 그런 것들이 어쩐지 마음을 허전하게 만들었지요. 그런데 나이 들고 보니, 그 허전함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 한쪽이 비워져야 다른 따뜻한 것이 들어올 자리가 생기더군요.
요즘은 아침에 창문을 열 때마다 공기 속에서 익은 냄새가 납니다. 감이 물드는 냄새, 오래된 나무에서 나는 단내 같은 것들. 그 냄새를 맡으면, 사람도 그렇게 익어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괜히 버티지 말고, 바람에 조금씩 물들어가며, 자신만의 색으로 늙어가는 것.
가을은 결국 ‘수확의 계절’이라 하지만, 저는 그것을 ‘되돌아봄의 계절’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내 안에서 이제 더 이상 싱싱하지 않은 것들을 고요히 내려놓는 시간.
그러다 보면, 정지용 시인의 말처럼 “이 계절을 무엇으로 기울 것인가” 하는 물음이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아마 그 답은 거창한 게 아닐 겁니다.
따뜻한 차 한 잔, 오래된 친구의 안부 전화, 그리고 오늘 하루 무사히 저문 것에 감사하는 마음.
그렇게 보면, 가을은 우리에게 쓸쓸한 슬픔이 아니라 다정함을 가르치는 계절입니다.
모든 것이 스러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속에서 세상이 한 번 더 성숙해지고 있는 거니까요.
오늘 오후, 번개처럼 모여 짧지만 마음 한가득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음식 속에서 우리들의 우정도 함께 익어갔습니다.
이우러지는 가을 햇살은 유난히 부드러워서, 그 부드러움이 우리 마음에도 스며들었습니다.
햇살에 비친 낙엽이 손끝처럼 흔들릴 때마다 서로의 이야기는 고요히 깊어졌습니다.
숲 속 공원으로 들어가, 그림책을 나누고, 시 한 편을 읽었습니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 가는
소리죽은 가을江을 처음 보것네” 라는 박재삼 시인의 “울음이 타는 가을江” 대신에
우리는 가을山을 보고 왔습니다.
올해의 가을은
그렇게 친구들과 함께
한 그릇의 따뜻한 음식과, 부드러운 커피 속에서
조용히 익어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