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견딜 온기

by 윤재

“라면 먹고 갈래요? “


오래전 출장길 비행기 안에서 본 영화 <봄날은 간다> 에서 나오던 노래가 한동안 제 마음에서 요동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여 여러 가수들이 부른 노래 "봄날은 간다"를 듣고 또 들었었지요.


최근에는

모 종편에 나온 차지연 씨의 "봄날은 간다"를 들으며, 객석에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울던 그녀의 아들을 보았습니다. 연기도 노래도 춤도 잘하는 그녀의 능력이야 익히 알고 있지만,

소박한 한복 차림의 그녀가 부른 "봄날은 간다"의 절절한 서정이 어린 아들에게도 전해졌던 것이겠지요.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갈래요? “

멋있게 늙어가고 있는 제인 폰다(에디 무어 역)가 로버트 레드포드(루이스워터스)에게 한 제안이었어요.


이제는 남들 눈 의식하지 않기로 했고, 혼자 견뎌야 하는 긴 밤이 외롭고 무섭다는 에디!

자러 오라는 제안이 무모하고 황당할 수 있지만, 외로움을 함께 견뎌낼 좋은 사람을 찾아

제안한 용기 있는 행동의 소유자 에디!


배우자와는 사별하고

자녀들은 곁을 떠나고,

적막한 집 안에서 쓸쓸한 밤을 보내는 일상.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우려에도 그들은 조금씩 서로의 내면을 드러내며 하루하루를

새롭게 맞이하고 지내게 됩니다.



<밤에 우리 영혼은, Our Souls At Night> 영화를 보았습니다.

함께 늙어가는 옆지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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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전개나 열정적인 로맨스 대신, 두 노인들이 나누는 대화는 나지막하고 잔잔합니다.

요즘 느려진 제 발걸음의 속도처럼, 영화는 천천히 그리고 잔잔히 진행됩니다.


나이가 든 두 사람이 서로의 밤을 함께 보내기로 마음먹는다는 설정은 낯설기도 했지만, 그 낯섦이 오히려 조용히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젊은 날의 사랑은 흔히 뜨겁고 요란하다면, 이 영화 속의 우정(또는 사랑)은 조용합니다. 서로에게 큰 기대를 걸지도 않고, 무엇을 약속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하루가 저물고 밤이 오면, 혼자 있기보다 둘이 있는 편이 덜 외롭겠다고 생각하는 마음.

그 단순한 마음 하나로 시작된 관계.

특히 좋았던 건, 인물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상대를 바꾸려 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나이가 들어서야 겨우 배울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젊을 때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또 그만큼 쉽게 상처를 주고받곤 하니까.


1967년 영화 <맨발로 공원을>에서 젊은 신혼부부로 호흡을 맞추었던, 로버트 레드포드와 제인 폰다는 훌쩍50여 년이 지난 후 백발의 노인으로 다시 역할을 수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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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스토리에 포함된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을 보여주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힘이 없어진 피부, 주름진 얼굴, 느린 동작으로 다가옵니다.

그들의 섬세하고 우아하기까지 한 연기는 잔잔한 줄거리에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영어 소설 읽기 모임에 우리가 읽었던 <위대한 개츠비> 후속으로 이 소설 <Our Souls At Night>을 제안했습니다. 영화와 소설의 내용은 조금 다르다고 알고 있지만, 영어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에서 다루어졌던 품격 있는 태도와 잘 들어주고 나누는 치유의 힘을 다시 확인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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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삶의 순간들 속에서 인간의 깊이를 포착한 작가”로 알려진 켄트 하루프(Kent Haruf, 1943~ 2014)의 소설에서는 대화가 따옴표가 없습니다. 따옴표가 있으면 대화가 “구분된 블록”처럼 보이는데, 작가는 따옴표 없이 대화와 서술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길 원했다고 합니다.


누가 말한 대사인지 구분이 안되어 있어, 더 집중하게 읽으며 주인공들의 감정을 따라가게 됩니다.




젊은 날에는 사랑을 이야기할 때 미래를 먼저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함께 할 시간, 이루고 싶은 일들, 아직 오지 않은 날들에 대한 기대.


하지만 나이가 들고 나니, 사랑이란 것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미래보다는 지금, 어쩌면 지난 시간에 대한 회상과 정리.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많은 것을 내려놓는 일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아주 작은 것의 소중함을 새롭게 알게 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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