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고 푸른 바다는 생각이 깊어지게 합니다.
탈레스는 모든 것의 근원을 물이라 했고, 시인은 멸치의 은빛 장엄과 희망을 그렸습니다.
오늘은 오후에 데크를 산책하다가 바다를 바라보기 위해 의자에 앉았습니다.
멀리 보이는 바다 끝 수평선은 일직선이 아니라 둥글게 넓은 원호를 그리고 있습니다.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배가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겠습니다.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바다를 보거나, 잔잔한 바다 수면 위에 마치 은빛 물고기들의 군무처럼 햇빛이 춤을 출 때, 상상력의 단초가 깨어납니다. 느긋하게 실눈을 뜨며 저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기다 보니 에피쿠로스 운 좋은 늙은이에 대한 글이 생각났습니다.
“운이 좋은 사람은 젊은이가 아니라
일생을 잘 살아온 늙은이다.
혈기가 왕성한 젊은이는 신념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고 운수에 끌려 방황하지만,
늙은이는 항구에 정박한 배처럼
느긋하게 행복을 즐긴다.”...... 에피쿠로스
에피쿠로스는 노년이 인생의 절정이자 최상의 단계라고 믿었다는데, 일부는 동의할 수 있는 그의 믿음입니다. 항구에 정박한 배라는 표현에서 상반되는 여러 가지 이미지가 연상됩니다. 오랜 해상일을 지나온 후 항구에 정박했을 때 선원들이 느끼는 자유로움과 신선함과 육지에서의 휴식 등을 예상할 수 있고요, 물건들을 하역하거나 새로운 물품을 선적하는 부산함도 있고, 거친 항해에서 손상된 배를 수리하거나 보완하는 작업들이 있어 ‘항구에 정박한 배’가 갖고 있는 다중적인 의미를 해석해 보게 합니다. 그렇지만 느긋한 행복이라는 표현은 마음에 드네요.
넓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커다란 고래의 유영과는 대조적으로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느껴지는 은빛 멸치 떼의 군무가 생각났습니다. 흔히 바다에서 고래를 보고자 하는 whale watching 투어는 있지만 멸치를 보려는 투어는 없지요.
서양 최초의 철학자로 알려진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로 규정했지요. 다양한 변화와 생명의 에너지가 물의 속성이라고 판단했을까요. 그가 바닷가 마을에 살면서 바라보거나 산책하면서 물을 생각했겠지요. 물의 저장소, 창고인 바다에서, 아주 작은 존재인 멸치를 그리며 쓴 문순태 시인의 시도 떠올려봅니다.
<멸치>
문순태
누가 너를 작고 못생겼다고 할까
너의 짧은 생은 참으로 치열했고
마지막 은빛 파닥거림은 장엄했다
너는 떼 지어 다닐 때가 빛났고
혼자 있을 때는 늘 빳빳한 주검이었다
그 여리고 애처로운 몸으로
넓은 바다를 눈부시게 누볐던
너는 아직 내 안에서 희망이 되어
슬프도록 파닥거리고 있다
.... 문순태, <생오지 생각>, 고요아침, 2018
바다는 날씨와 바라보는 장소에 따라 다양한 푸른색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태평양의 경우 바다는 잔잔하고 서늘한 청색으로 보입니다. 그 물빛이 어쩜 그리 깊고 아름다운지 한참을 내려다보기도 했습니다. 바다 물빛이 푸르게 보이는 것은 빛의 산란 현상 때문이고 그 정도와 바다 깊이에 따라 다양한 색으로 표현됩니다.
태평양(Pacific Ocean)은 세계에서 가장 큰 바다이며 그 면적은 지구상의 모든 대륙을 합친 것보다 넓어서인지 그 깊이 또한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동아시아 및 오스트레일리아와 아메리카 대륙 사이에 있으며 적도를 기준으로 북태평양과 남태평양으로 구분합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바다인만큼, 태평양은 많은 자원과 생물자원의 보고이며 스노클링이나 다이빙 등을 포함한 수 많은 해양 활동을 즐길 수 있지요. 예전에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험난한 해협을 통과한 뒤 잔잔하고 평화로운 바다를 보고 ‘평화로운 바다 mare pacificum’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태평양으로 불리게 되었답니다.
흔히 태평양은 ‘여성의 바다’로 대서양은 ‘남성의 바다’로 불려지기도 한다는군요. 그래서인지 북유럽 기항을 마치고 북미 캐나다로 건너갈 때 북대서양을 통과했는데 바다가 얌전하지 않고 거칠게 성난 근육질을 자랑하는 것처럼 롤링이 심했습니다. 대서양(Atlantic Ocean)은 그리스 신화의 아틀라스(atlas)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아틀라스의 바다’라는 뜻이랍니다. 페르세우스가 괴물 메두사를 물리치고 돌아오는 길에 하룻밤 잠자리를 아틀라스에게 요청하였으나 거절되었고, 이에 화가 난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머리를 보여줌으로써 아틀라스는 돌로 변하였지요. 이 돌이 아프리카 북서부 알제리와 모로코에 걸쳐있는 아틀라스 산맥이고, 이 산맥의 앞바다를 아틀라스의 바다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14층에 있는 뷔페 식당의 경우, 바다를 내려다보는 창가 쪽 식탁이 먼저 점유 되곤합니다. 다양한 표정의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를 즐기는 여유를 승객들이 선호하고 있는 것이지요.
바다에 대한 상념에 빠져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습니다. 아침 해돋이 바다도 아름답지만 저녁 석양이 질 무렵의 해넘이 바다의 장엄한 아름다움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석양이 질 무렵의 데크는 아름다움 풍광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하는 승객들이 멋진 포즈를 취하기도 합니다. 저무는 하루는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그들을 정답고 따뜻한 마음으로 지켜보며 그들의 시간을 응원합니다.
하루를 비추며 빛나던 태양이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며 수평선 속으로 사라질 때 한순간 바다가 녹색 빛을 발하는 플래시(green flash) 현상도 볼 수 있습니다. 태양이 뜨거나 지기 직전에 태양 주변에 드물게 나타나는 녹색 그림자가 나타나는 광학 현상입니다. 지구 대기가 태양의 빛을 여러 색으로 분산, 굴절시키기 때문에 발생하는데 저희는 아쉽게도 그 현상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습니다.
일몰 후 약 5-10분의 매직아워로 불리는 시간에 순간순간 다양한 색들, 오렌지와 보라색, 황금색이 어우러져 하늘을 가득 메우는 그 아름다운 광경을 남편과 손을 잡고 감동의 마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그린 플래시를 보면 행복해진다는 전언이 있지만, 비록 그린 플래시를 못 보았어도 오렌지와 보라 황금색의 너울 속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