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박쥐나 올빼미같이 살며 짐승처럼 일하다가 벌레처럼 죽는다”
(마거릿 캐번디시)
장송곡 같은 인용문으로 시작된 글을 읽어나간다.
‘남자 셋을 부양하기 위해 컴컴한 새벽길을 나서는 일이 서럽고,
아무도 눈 맞춰주는 이가 없는 낯선 건물을 닦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이 고됐을 것이다. “ 엄마의 신성한 노동은 일흔이 넘도록 끝나지 않는다. ...p. 101
--- 은유 저, <다가오는 말들> 중에서, 2019, 아크로스출판그룹(주)
설 명절의 끝날입니다.
귀경 기차 속에서
앞 좌석을 향해 고개로 꾸벅꾸벅 열심히 반성을 하면서
명절의 피로를 풀었습니다.
여전히 명절 준비과정에 대한 여성들의 90% 정도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설문조사에 대한 뉴스 보도가 있습니다. 81% 이상이 명절 이후 신체적, 정신적 피로를 겪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명절 증후군 증상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전체 응답자의 85%가 충분한 휴식을 꼽았다고 합니다. 어느 종가댁에서는 설 명절 차례에도 손주는 오지 않고 70대 자손들만 참여하고 있다면서 변화되는 세태를 걱정합니다.
이제 나이 듦은 조용한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그건 시끄럽게 불편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불가피하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 나이 듦에 동반되는 고독은 혼자 방에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우리가 더 이상 예전처럼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고독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가 점점 더 한정적임을 인식하게 되는 고독입니다.
노년의 시간에도 청소일을 하는 모성의 신성한 노동에 피로가 덜하기를 바라게 됩니다.
은유 작가의 저서 <다가오는 말들>은
'나' 중심의 시대에 이야기하는
'타인'의 입장에 서보는 일의 가치,
그리고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우리가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희망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명절의 끝자락에서 제가 다시 집어든 책의 첫 문장은 <엄마의 노동은 일흔이 넘어도 계속된다>였습니다. 마가릿 캐번디시의 인용문에서 크리스티안 크로그의 그림이 연결되는 오늘입니다.
그림 출처: 파니 블랑의 일러스트레이션, <마가릿 캐번디시의 미친 상상력>, 2024,
THE NEW YORKER 기사 중에서
마거릿 캐번디시(Margaret Cavendish, 1623 ~ 1673)는 영국의 작가이자 철학자, 시인으로, 여성이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하던 시절 -17세기 중반의 영국 사회에서- 독특한 입지를 차지했던 인물입니다. 그녀는 뉴캐슬 공작 1세인 윌리엄 캐번디시(William Cavendish)와 결혼하여 유명한 가문인 캐번디시 가문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당시 여성들이 겪는 사회적 제약을 넘어서 많은 글을 쓰며 자신의 사상과 의견을 표현했습니다. 그녀는 시대의 규범을 따라 살아가지 않았고, 지적인 대화에 참여하고, 자신의 생각을 담은 책을 출판하는 등 당시로서는 드문 여성을 위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녀는 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특히 철학과 자연학, 그리고 여성의 역할에 대해 강한 의견을 표명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여성 작가가 익명으로 남아 있던 시기에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글을 쓴다 “고 선언했습니다. 수줍음이 많고 고독한 여성으로, 시와 과학적 탐구에 대한 열정이 넘쳤습니다. 캐번디시는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여 글을 쓴 최초의 여성 중 한 명이었고, 17세기에 자신의 자연 철학을 발표한 유일한 여성이었으며, 새로 설립된 왕립 학회를 방문하도록 초대된 최초의 여성이었습니다.
캐번디시는 20권의 희곡, 시, 에세이, 풍자를 통해 원자론, 물질주의, 동물권과 같은 아이디어를 젠더와 에티켓에 대한 논의와 함께 탐구했습니다. 성별 때문에 정규 교육과 직업을 거부당한 캐번디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글을 썼고, 독자들에게 "배움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그것에 정통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도 그것에 대해 나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라고 호소했습니다.
영국 콜체스터의 유복한 가정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마거릿 루카스는 소녀 시절부터 사교육을 받았는데, 훗날 그녀는 "이익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형식적인 것을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그녀의 가족은 왕당파였으며, 1644년에 그녀는 헨리에타 마리아 여왕과 함께 프랑스로 망명하면서 더 먼 곳을 여행했습니다. 그녀는 1645년에 뉴캐슬 후작인 윌리엄 캐번디시 (William Cavendish)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마가릿 캐번디시의 "“여자는 박쥐나 올빼미같이 살며 짐승처럼 일하다가 벌레처럼 죽는다”는 의미는 여성이 겪는 고통과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말은 여성이 살아가는 방식과 사회에서의 역할을 매우 비관적이고 힘겹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박쥐와 부엉이는 보통 어두운 밤에 활동하는 동물들입니다. 이는 여성들이 사회에서 자주 비치는 어두운 면이나, 드러나지 않는 힘든 현실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여성들은 때때로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불리하거나 은폐된 위치에 놓이기도 하며, 그들의 고통이나 고난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짐승처럼 일한다는 표현은 여성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일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역사적으로나 현재에도 많은 여성들이 가사 노동, 육아, 직장 생활 등에서 많은 부담을 지고 있으며, 그들이 겪는 고통이나 피로는 종종 보상받지 않거나 인식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벌레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하찮거나 천대받는 존재로 인식됩니다. 이 부분은 여성이 사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죽음이나 끝을 맞이할 때 아무런 주목도 받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는 여성의 삶이 사회적으로 무시되거나, 개인적인 희생이 종종 잊히는 현실을 지적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녀가 전한 문장은 이 말은 여성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그 고난이 종종 외면당하거나 무시된다는 비판적인 시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가릿 캐번디시는 여성들이 사회에서 겪는 불평등과 차별을 강조하고, 그들의 고통에 대한 인식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가릿 캐번디시의 인용문은 노르웨이 화가 크리스티안 크로그의 그림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크리스티안 크로그, <잠자는 엄마와 아이>, 1883, 국립 회화, 건축, 디자인 박물관
새근새근 평화롭게 자는 아이와 달리 침대 모서리 끝에 무거운 머리를 대고 입을 약간 벌린 채 자는 엄마의 피곤이 캔버스 밖으로 무겁고 진하게 다가옵니다. 한 손은 아기의 요람을 붙잡고 있습니다. 피곤한 엄마 묘사와 아이의 평화는 모성에 필요한 보살핌과 헌신을 말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감정적 체중에 대한 크로그의 공감을 반영합니다. 그림의 따뜻하지만 차분한 색조는 평온함을 만들어 가족의 유대와 어머니의 지칠 줄 모르는 사랑을 나타내는 감동적인 표현으로 만듭니다. 엄마에게 주어진 잠깐의 휴식이 달콤합니다.
이 그림을 그린 크리스티안 크로그(Christian Krohg, 1852~1925)는 노르웨이의 사실주의 화가이자 삽화가, 작가, 기자입니다. 그는 일상생활 속의 모습을 그렸고, 노르웨이 국립 미술 아카데미의 감독이자 교수를 역임했습니다. 그의 아버지(Friedrich Krohg)는 유명한 정치가이자 법학자였고, 크로그는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대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노르웨이의 정치와 법률 제도를 개선하려고 했으며, 특히 노동자 계층의 권리와 사회적 복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의 정치적 견해는 당시 보수적인 사회 구조를 비판하는 내용이었고, 개혁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크리스티안 크로그가 성장한 환경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크리스티안 크로그는 이러한 아버지의 사회적 의식과 관심을 물려받았고, 그의 작품에서도 사회적 문제와 인간의 고통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가 8살이었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고모가 집안일과 조카들을 돌보았다고 합니다. 법률가가 되기를 바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오슬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배심원이 되었다가 미술교육을 받고 화가로 작가로, 기자로 활동을 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인간 존재의 투쟁에 초점을 맞춘 사회적 현실주의를 묘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예술은 개인이 자유로운 사회를 개발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폈던 그는 여러 권의 소설과 에세이를 집필했으며, 그 작품들 역시 사회적 현실과 사람들의 삶을 탐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크로그는 예술과 문학을 통해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표현했으며, 그가 활동한 시대의 중요한 사상적 흐름을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크리스티안 크로그, <피곤, tired>, 1885, 국립 미술, 건축, 디자인 박물관
창가에 옆 재봉틀 앞에서 잠시 의자에 기대어 잠이 들었군요. 한바탕 재봉질이 끝나고 달콤한 휴식에 들어간 것일까요 앞 테이블엔 벌어진 가위와 실패와 작은 원단조각이 있습니다. 의자에 놓인 커피잔 속의 커피는 아마도 차디차게 식어있겠지요,...
그녀의 짧은 잠을 방해하지 말아야겠어요.
크리스티안 크로그, <생존을 위한 투쟁>, 1889, 국립 미술, 건축, 디자인 박물관
눈이 내렸고 길은 빙판으로 얼어붙었습니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 부족함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겨울은 유달리 시리고 춥습니다. 창문을 열고 나눠주는 빵에 매달린 손들이 힘겹습니다.
뒷줄에서 초점을 잃은 아이들이 들고 있는 빈 깡통이 유달리 크게 보이고 그들의 남루한 옷자락과 드러난 빨갛게 언 손등이 마음을 저리게 합니다.
그나마 이 아이는 빵 한 개를 얻었을까요?
우리를 바라보는 왼쪽 앞의 소년이 베어 물은 둥근 빵이 다행이다 싶습니다.
이 그림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생존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제목 자체는 아마도 개인들이 직면한 어려움에 대한 은유일 것입니다. 이 작업에서 주제는 가혹한 삶의 현실에 맞서 싸우는 사람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19세기말, 노르웨이 사회 권력층은 빈민 구제를 극히 일부 사람들의 문제로 여기며, 도심 미화 개선 관점에서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다고 합니다. 크로그는 골목 곳곳에서 매일 벌어지는 현실을 모두의 눈앞에 들이밀며 게으른 생각을 깨웠습니다. 일종의 충격요법이 될 수 있을까요.
19 세기말 노르웨이는 스웨덴과의 연합에서 입헌 군주국이었습니다. 스웨덴과의 연합에 의해 노르웨이의 정치적 자율성이 제한되었지만, 이 나라는 더 큰 독립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고 결국 1905년에 완전한 주권을 달성했습니다.
노르웨이의 빈곤층은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급증한 것으로 보입니다. 산업화 초기에는 많은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며 가난하게 살았고, 농업을 떠난 사람들 중 상당수가 빈곤에 처해 있었습니다. 정확한 인구 비율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당시 노르웨이 사회에서 빈곤층은 매우 큰 비율을 차지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빈곤층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는 부족하지만, 사회적 불평등과 경제적 격차가 두드러진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인구는 급격히 증가했으며,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빈곤층도 늘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도시로 이주했지만,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노동 계층의 가난은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이러한 빈곤 문제는 후에 노르웨이 사회의 큰 과제가 되었으며, 20세기 초 사회 복지와 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위한 논의와 정책들이 점차적으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현재 노르웨이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발전된 국가 중 하나로, 높은 1인당 GDP와 국민 복지를 자랑합니다. 석유와 가스를 기반으로 한 경제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지속 가능한 발전과 다각화를 추구하며 친환경 에너지와 기술 혁신에도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 복지와 고용 안정성 등의 측면에서 뛰어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어, 전 세계적으로 높은 경제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연말이나 명절 즈음에 정치인들이 가난한 이들을 방문하는 것은 그들의 현실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를 가질 수 있지만, 단기적인 조치나 정치적 쇼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비판을 받습니다. 빈곤층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며,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정치인들의 진정성과 실천적 접근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연말 방문을 넘어서,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정책적 변화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합니다.
마거릿 캐번디시는 "평화 속에는 최고의 지혜가 있으며, 그 지혜는 마음이 가장 조용하고 평화로울 때 가장 순수하고 훌륭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연휴 후의 고요함 속에서,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과 나 자신을 돌보는 일 사이의 섬세한 균형을 잘 유지해야겠습니다. 저녁의 평온은 단순히 물리적인 고요함을 넘어, 피로를 녹이고, 우리의 내면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 줍니다. 떠들썩한 명절의 끝에 맞이하는 이 평온함은 마치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소중한 여백과도 같습니다. 고요함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