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by 윤재

58. 자운영 꽃밭에서



<자운영 꽃밭에서>

박노해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선분홍 꽃들이

너무 고와서

점점이 가득 지펴놓은

연한 핏방울 꽃들


쟁기로 갈아엎어져

거름으로 돌아가는 꽃들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사라진 별들이

너무 아파서


들판을 걸을 때, 자운영(紫雲英)은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보랏빛 구름’처럼 피어 있는 꽃으로 나타납니다. 그 이름처럼 자색(紫色)의 운무(雲霧)를 품은 듯한 이 꽃은 초록빛 논두렁에 가볍게 내려앉은 하늘의 그림자 같지요. 자운영은 그저 한낱 봄철의 풀꽃이 아니라, 대지를 덮고 시간 위에 피어나는 정서의 흔적입니다.


꽃이 자줏빛 구름과 같다고 해서 “자운영(紫雲英)”이란 이름이 붙었다니 로맨틱합니다.

그렇지만 이 꽃과 관련된 이야기 중에는 애절한 이야기도 있다고 하는군요.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의 버전은 조금씩 다르게 전해지기도 하지만...


아이가 없는 사이좋은 부부가 산신령의 조언대로 폭포 밑에서 천일동안 기도하여 얻은 예쁜 아이의 이름이 ‘자운영’이었답니다. 건강하고 예쁘게 잘 자랐는데 어느 날 젊은 임금이 사냥하러 왔다가 첫눈에 반해서 자신이 궁으로 돌아가 꼭 자운영을 왕비로 맞이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떠났답니다.

애절한 이야기라고 서두에 했으니 혹시... 하면서 짐작을 하시겠지요.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혀 바로 자운영을 왕비로 맞이할 수 없었고, 기다리던 자운영은 낙담 속에 기다리다 세상을 먼저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요.

뒤늦게 신하들을 설득해서 꽃마차를 끌고 임금이 왔지만, 자운영은 없고.....

무덤가에서 슬프게 운 임금의 눈물이 떨어진 곳에 분홍색과 흰색의 꽃이

피어났으며, 그 꽃의 이름은 ‘자운영’이 되었고요.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7권에도 자운영꽃에 대한 문장이 섬세한 묘사로 펼쳐집니다.



“아지랑이의 어질거리는 춤사위 속에 유별나게 고운 꽃밭이 들녘 여기저기 펼쳐져 있었다.

싱그러운 초록빛 잎들이 풍성하게 바다를 이룬 가운데 선연하게 붉은 꽃들이 보석을 뿌린 듯 낭자하게 피어나 있었다. 싱싱하게 돋아 오르는 초록빛 위에 점점이 찍힌 붉은 꽃들은 핏빛으로 고왔다. 넓게 펼쳐진 초록빛은 붉은 꽃들을 더 붉게 받쳐 올리고, 수없이 많은 붉은 꽃들은 초록빛을 더욱 풋풋하게 북돋우면서 극치의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었다. 그 들판에 펼쳐진 꽃밭은 바로 자운영의 모습이었다......”p.76



“자운영은 거름에 좋아 길러진 것이었다.

자운영 붉은 꽃이 넘실거리는 논둑에서 송아지들이 가끔 긴 울음을 울고는 했다.

그건 쟁기질을 하고 있는 어미소에게 배고픔을 알리는 소리였다. 그러나 자운영을 뜯어먹지 못하도록 입에 주둥망이 씌워진 어미소는 새끼의 배고파하는 소리를 들은 듯 만 듯 그저 묵묵히 걸음을 옮겨놓을 뿐이었다. 송아지는 그런 어미소를 따라 논두렁을 돌며 아지랑이에 취한 듯 맥없는 울음을 길게 울고는 했다. 어미소는 쟁기질이 힘겨워 끈끈한 침을 질질 흘리면서도 아랫배에는 탱탱하게 불어난 젖을 풍만하게 매달고 있었다....” p.77



붉은 꽃이 맑은 초록빛 새싹 위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장면은, 단순한 색의 대비를 넘어 생명과 정열이 부딪혀 만들어낸 조화의 미학입니다. 그 초록빛은 꽃을 더욱 붉게 보이게 하고, 붉은 꽃은 초록을 더욱 싱그럽게 밀어냅니다. 눈부신 생명의 대화가 거기 있습니다.


자운영은 단지 아름다움을 위해 피는 꽃이 아니라서 더 깊게 아름다움이 다가옵니다. 그것은 ‘좋은 거름’이 되기 위해, 곧 다른 생명을 위한 희생의 자리에 서 있는 존재로.

논밭에 녹아드는 그 꽃은 결국 쌀을 키우고, 사람의 밥상이 되고, 공동체의 생계를 돌보게 되지요. 그래서 이 꽃은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가장 풍요로운 꽃이며, 침묵 속에서 많은 것을 준비하는 어머니 같은 존재입니다.



“자운영 붉은 꽃이 넘실거리는 논둑에서 송아지들이 가끔 긴 울음을 울고는 했다.” 이 한 문장은 자운영이 피어 있는 들녘의 시간과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송아지의 울음은 단순한 배고픔의 소리가 아니라, 그것은 먹이를 향한 본능이자, 금지된 욕망이며, 자운영을 먹지 못하게 재갈을 문 어미 소에 대한 그리움입니다. 어미 소는 말없이 쟁기를 끄며, 자신의 젖을 달라는 송아지의 울음을 묵묵히 속으로 삼킵니다. 어미 소는 자기 몸을 자운영보다 먼저 희생시키며 대지를 가는 또 다른 생명의 몸이 됩니다.

그 광경은 아름답고도 슬픕니다.

자운영은 먹히지 못한 채 붉게 피고, 어미는 먹이보다 깊은 애착을 등에 지고 쟁기를 끕니다.

묵묵히...

그러므로 자운영의 꽃밭은 단지 ‘고운 꽃밭’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 욕망과 절제, 생명과 노동이 교차하는 다층적 서사 공간입니다.

결국 자운영은 봄의 꽃이라기보다 ‘사람의 꽃’입니다. 땅 위의 정성, 뿌리내린 노동, 그리고 침묵 속에 움트는 사랑이 자운영 송이송이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잊고 있던 들판의 시학(詩學), 그 조용한 가르침이 이 꽃 속에 살아 있습니다.


봄날의 어느 오후, 그 붉은 안갯속을 걸으며 “그대의 관대한 사랑”이라는 자운영의 꽃말을 생각해 본다면, 그 고요한 들녘에서 우리들 마음에도 보랏빛 구름꽃이 피어날 것입니다.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박노해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어진 구절 속에 “점점이 가득 지펴놓은/ 연한 핏방울 꽃들”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자운영은 더 이상 단지 논밭의 잡초나 초록 위의 장식이 아니라, 그것은 ‘빛의 피’, ‘별의 부재’, ‘노동의 희생’이 깃든, 울음의 꽃밭이 됩니다.


『아리랑』 제7권에 등장한 자운영도 그러했습니다. “초록빛 위에 점점이 찍힌 붉은 꽃들”은 보기에 아름다웠지만, 그 꽃의 아래에는 소리 없는 희생이 있었습니다. 어미소는 자운영을 먹지 못하게 재갈을 물었고, 송아지는 길게 울었지요. 긴 송아지의 울음은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박노해 시인의 시는 이 들판의 고요한 울음을 다시 불러내는군요.
쟁기로 갈아엎어져

거름으로 돌아가는 꽃들”이라는 표현은 자운영이 단지 피기 위해서만 피는 꽃이 아님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땅을 위해 피고, 사람의 밥을 위해져야 하는 운명적인 순환의 꽃입니다. 그 운명 앞에서 시인은 눈물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사라진 별들이 너무 아파서”울었다는 고백은 자운영의 꽃잎 사이로 지워진, 어떤 기억과 사람들, 시대의 슬픔까지도 떠오르게 합니다.



자운영은 봄이 되면 짧게 피었다가 금세 지는 꽃입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놀라운 생명의 서사와 윤리가 녹아 있습니다.
그 꽃은 늘 낮은 곳에 있습니다. 사람의 발끝보다 더 낮은 자리에서 초록을 받고 붉음을 피웁니다.

그러나 그 꽃은 그 낮은 자리에서 가장 큰 사랑과 가장 깊은 울음을 품고 있는 꽃입니다.

자운영은 묻습니다.
"나는 거름이 되기 위해 피었습니다. 그대는 무엇을 남기고 떠나시겠습니까? “



‘보랏빛 구름’ 같은 자운영은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들풀일지 모르지만, 시인의 눈과 마음에 담기면 그것은 하나의 생명 철학이자 눈물의 언어가 됩니다.
그 붉은 꽃밭 앞에서 시인은 울고, 송아지는 울고, 우리는 조용히 멈춰 섭니다.
자운영은 그것은 다만 살아간다는 것의 숙연한 아름다움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 보랏빛 꽃밭을 다시 떠올리며, 조용히 되뇌게 됩니다.

“자운영 꽃밭에서 나도 울었다.”



그대의 관대한 사랑.png




자운영과 나비.png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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