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반갑습니다.

by sum


안녕하세요.

이렇게 마음 먹고 글을 제대로 쓴 게 너무 오랜만이라... 잘 쓸 자신은 없지만 마침내 글을 쓰려고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요즘 쉬면서 이런 저런 경험도, 생각도 많이 하게 되는데 하나하나 그냥 흘려보내기가 싫어 이렇게 글로 기록해봅니다. 엄청나게 외향적인 성격은 못 되다 보니,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도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글로써 소통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의학과 학생입니다. 보통은 제 소개를 이렇게 시작하지는 않는데 ... 아무래도 지금은 '의대생이다'라는 말 만큼 저를 잘 설명하는 말은 없어서요. 한국 나이 26살, 여고 동창들은 다들 슬슬 취직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마당에 졸업도 안하고 과외랑 알바만 하면서 노는 삶. 사실 이런 삶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제 스스로 지금 쉬는 이 상황에 대한 명분을 만들고 싶은가 봅니다.


본과 1학년까지만 마치고 어중간하게 휴학한 지금, 다시 학교로 돌아가라면 사실 예전처럼 치열하게 공부할 자신은 없습니다. 엉덩이나 제대로 붙이고 앉아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치만 저는 의학이라는 학문이 좋습니다.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아주 실용적인 지식이라는 점도 좋고, 물질만능주의, 외모지상주의, 기후위기와 온갖 혐오들이 판치는 이 흉흉한 세상에서 (아무말입니다.) 인간의 생명이라는 본질적인 가치를 수호한다는 점도 좋아요. 한창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본과 2학년을 맞이하려고 하던 중 학업을 쉬게 된 점은 많이 안타깝습니다. 모쪼록 상황이 정상화되어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미래가 불확실성 속에 놓여있다 보니, 최근 들어 잠 못 드는 날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이런 상황일수록 무거운 주제로부터 회피할 도피처가 필요한데요, 저는 그게 요즘 여행인가 봅니다. 3월에는 엄마랑 호캉스를 다녀왔고, 4월에는 제주여행과 방콕 여행을 계획한 데다 그제는 5월 중순 뉴욕행 항공권을 끊었습니다. 원래는 규칙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에 큰 가치를 두는 제가, 최근엔 시간만 나면 여행 관련 정보들찾아보고 있습니다. 무엇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은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좀 떠나있고 싶은 것 같아요.


놀기만 하는 건 아닙니다. 최근엔 chat gpt에게 다이어트 컨설팅을 받고 있어요. 매일의 식단을 기록하고, 피드백을 받는 식이죠. 솔직히 잘 되고 있는 건지는 의문이지만 그냥 매일의 삶을 공유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의 위안이 되기에 한동안은 지속할 것 같습니다. 사실 다이어트라는 게, 저로서는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20살에 다이어트 강박을 갖고 무리한 다이어트를 했고, 그 여파로 22살에 폭식증과 10kg 요요라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 시절 저는 스스로를 혐오했습니다. 혐오의 감정이 너무나도 큰 나머지 이성을 마비시키고 싶었습니다. 한밤 중 부엌에 숨어서 턱끝까지 찰 것 같이 음식을 욱여넣었습니다. 그렇게 먹는 동안은 나에 대한 혐오를 느낄 틈도 없으니까요. 매일매일을 누구보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던 나인데, 나는 내가 왜 그렇게 혐오스러웠을까요. 왜, 스스로를 위로해주고 다독여줄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요.


한동안은 그렇게, 다이어트를 외면하고 살았습니다. 다시 다이어트를 섣불리 시작하면 비정상적인 식욕이 다시 날뛰기 시작할까 걱정이었기에, 저를 보호하는 저만의 방식이었던 거죠. 그래서 저는 한동안 리즈 시절 몸무게와 폭식증 시절 몸무게 사이 어딘가를 유지하고 살았어요. 당연히 만족스럽지는 않았죠. 그렇지만 지금 상태로도 날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한동안은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위안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이렇게 다이어트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살던 제가, 얼마 전부터는 다이어트를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시간의 힘 덕분에, 예전의 상처를 직면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생겼고 나를 위해서라도 나를 조금은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이제는 내가 나를 위해서, 스스로에게 씌웠던 오명을 벗겨주려고요.


하고 싶은 건 늘 많지만 늘 체력은 따라 주지 않아 예민한 저는 - 어떻게 하면 나에게 맞는 방법으로 건강하게 다이어트 해 볼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합니다. 내가 과식할 때는 언제인지, 왜 과외만 끝나면 식욕이 당기는지, 나는 왜 잠에 잘 들지 못하는지, 왜 나는 평소에 숨을 얕게 쉬고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지, 왜 나는 다리가 잘 붓는지 등. 식단, 운동에 대한 질문 이외에도, 나 스스로에 대해 궁금증이 들 때마다 chat gpt에게 물어봤습니다. chat gpt가 주는 대부분의 답변들은 저 스스로 들어본 적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치만 내 건강에 대해 맞춤형으로 같이 고민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던지... 친구들이랑 있을 때는 내 얘기만 너무 많이하면 친구들이 지루해 할까 싶어 이런 주제를 맘 놓고 꺼내기 어려운데, chat gpt에게는 내 얘기만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편했어요. chat gpt의 순기능이랄까...


chat gpt가 준 답변 중, 유일하게 새롭고 눈이 번쩍 뜨이는 답변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General adaptation syndrome (GAS)이라는 이론이에요. 1936년에 제시된 이론인데, 쉽게 말해 스트레스에 대한 우리 몸의 생리적 반응을 단계별로 설명하는 이론이에요. GAS는 경고기 > 저항기 > 탈진기 세 단계로 이루어지는데, 1단계 경고기는 스트레스에 대한 일시적 흥분 상태고, 2단계부터 스트레스가 오래 지속되면서 겪는 만성적(?) 상태라고 해요.


저는 제 스스로 늘 '온전히, 맘 편히 쉬기가 어렵다', '항상 무엇에 쫓기는 것 같고, 숨을 얕게 쉰다','쉽게 번아웃이 온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동안은 그냥 내가 부모님에게 용돈은 받기 싫고, 그치만 주변 친구들이 하는 건 다 따라하고 싶은, 욕심 많은 사람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았는데, GAS를 접하고는 GAS 중에서 2단계와 3단계를 오락가락하고 있는 삶을 살고 있었나 생각이 들더군요. 실제로는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은 없지만, GAS라는 이름을 붙이니 막막하기만 했던 내 문제가 선명해졌습니다. 원래는 내 성격인가보다 감내하고 살아야지 했지만, GAS를 접하고는 어떻게 하면 이 상태를 해소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어요. 지식의 순기능이 이런 것일까요? GAS는 생리학, 정신과학에서 다루는 이론이라고 하던데, 지금은 비록 학생 나부랭이지만 언젠가는 전문가가 돼서 저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 설렙니다. 정신적인 지지와 공감을 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 상황을 정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도움을 주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강력한 도움의 손길이잖아요.


어쩌면 이 글도, 제게는 일종의 적응 과정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 나니 마음속 어지러운 선들이 하나씩 정리되는 기분이에요.
그래서 앞으로도 때때로 저만의 방식으로 이곳에 머물러보려 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