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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익썬 Oct 17. 2022

차녀이야기 02. 사진과 유전자

이기적인 유전자는 차녀에게 무엇을 바랐는가?

나에겐 아기때 사진이 없다. 나라는 존재가 주인공이 되어 사진을 찍은 건 유치원에서 처음 찍었다. 하지만, 유치원 가기 전 나는 사진도 없었지만 눈치도 없었다. 부모님의 사진첩에 아버지의 무릎에 앉은 3살 남짓한 예쁜 여자 아이 사진이 있었다. 흑백의 사진 속 여자 아이는 눈이 크고 까무잡잡했지만 난 그 사진 속 여자아이가 '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사진을 사진첩에서 꺼내 한참을 보기도 하고 어떨 땐 내 사진인냥 들고 다니다가 나만의 공간에 두기도 했다.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있다는 그 호강과 아버지의 커다란 눈매와 똑 닮은 커다란 눈을 가진 여자아이는 나였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철이 들고 까지는 아니고 (나이 40이 넘도록 철은 아직 안 들었다.) 유치원에 가서 찍은 사진 속 눈이 작고 얼굴이 덜 까무잡잡하고 대신에 붉은 홍조를 띈 뺨을 가진 심하게 꼬불거리는 곱슬머리를 가진  여자아이가 나라는 것을 알고 나서 사진 속 여자아이는 언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사진은 차녀로서 가지는 나의 자격지심의 정점에 있었다.

먼저, 아버지의 무릎. 나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무릎에 앉은 적이 단 한 번 있었다. 단 한번 내가 기억하기로 단 한번. 그건 부모님이 부부동반 계모임 여행을 가는 관광버스 안이었다. 당시 주말이고 평일이고 없이 바빴을 삶에서 부부동반 여행은 부모님에게도 엄청난 중요한 선택이자 일종의 휴가였을 것이다. 단 하루도 쉴 수 없는 장사를 하셨던 부모님이 그 하루를 비웠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황금같은 휴가에 나, 차녀인 나를 데리고 가셨다니 말이다. 두명만 앉을 수 있는 관광버스에 나는 아버지 무릎이라는 좌석에 앉았다. 하지만, 신은 나를 차녀로 태어나게 했을 때에 이미 나의 운명을 가지고 장난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아버지의 무릎은 언니가 앉았던 것처럼 쉽게 앉을 수 없다는 신탁을 내렸는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더 진동과 매연에 취약한 관광버스는 이리 저리 흔들렸고 아버지의 무릎 위의 여자 아이는 기쁨에 들떠서 위까지 들떠 버렸다. 오르락 내리락하는 위 안에 음식물들은 위산이라는 막강한 공격자 앞에 굴복하지 않고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쳤다. 에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길고 긴 식도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연어의 회귀본능 저리가라의 물리적 본능으로 중력을 거스리는 엄청난 본능으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구토.

정말 오랫만에 어쩌면 단 한번이었을지도 모르는 둘째딸을 무릎에 앉힌 아버지가 당한 봉변. 정말 오랫만에 어쩌면 처음이었을 가족여행에서 아버지가 당한 봉변. 그 흥겹고 설레던 기분은 자신의 무릎에 앉은 차녀의 구토로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나의 첫 멀미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후 난 아버지의 무릎에 앉은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사진 속 부녀는 붕어빵 틀에 찍어 낸 것처럼 똑 닮았다.

자신의 눈에 너무나 이뻐서 결혼한 얼굴이 하얗다 못해 밀가루에 가까운 아내가 그런 얼굴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까맣고 눈만 큰 여자 아기를 낳았지만 아버지는 조금의 지체함 없이 출생신고를 하였다. 한치의 의심도 없이 아내를 전혀닮지 않은 여자 아이의 얼굴을 보고도 빠르게 자신의 호적에 이름을 올렸다. 왜냐하면 언니는 아버지를 너무나 똑 닮았기 때문이다. 

유전자의 힘.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유전자는 자신의 DNA를 전달하기 위해 인간을 숙주처럼 이용한다고 했다. 자신이 후대에 전하고 싶은 유전자를 발현하기 위해 인간은 번식을 하고 죽어간다. 내 아버지의 유전자를 몰빵으로 받아서 발현된 존재가 언니였다. 이기적인 유전자가 특히 이기적인 아버지의 유전자가 장녀인 언니에게서 발현되었다. 

장녀는 아빠를 닮아야 잘 산다.

그래서 언니가 잘 살고 있나보다. 이 말을 만든 사람은 분명 뭔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유전학을 공부하지 않았던 그 오랜 먼 옛날부터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 시절부터 였는지도 모른다. 문자가 없던 그 시기에도 인간은 번식했을 것이고 두 남녀가 만나 첫 아이  특히, 여자 아이를 낳았을 때 그 생김새가 모계가 아니라 부계 몰빵의 유전자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지금도 심심찮게 장녀가 태어났는데 아버지를 닮은 경우가 흔하게 많으니 말이다. 야구선수 이대호 선수와 딸의 얼굴이 갑자기 떠오른다. 그들 부녀만큼 똑 닮은 언니와 아버지였다. 데이터의 힘이 만든 말이다. 수천년 아니 수만년 전부터 인류는 장녀가 아버지를 닮을 확률이 엄청 높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장녀가 아빠를 닮으면 잘 산다는 말을 만들었을 것이다. 높은 확률의 결과에 어울리는 덕담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 덕담은 아기의 출산이라는 축복의 자리에 어울리다 못해 환상적인 금상첨화의 덕담이다. 특히 남아선호 사상에 첫 아들이 아닌 첫 딸을 낳은 조금은 낙담한 부모에게 가장 멋진 덕담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거기에 장단을 맞추는 이기적인 유전자. 필시 자신의 완벽한 생존전략이었을 것이다. 행여 아내만 닮은 딸 아이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의심을 추호라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신의 빅피쳐였는지도 모른다. 믿음과 사랑의 가정에 어울리게 아버지를 똑 닮은 첫째딸은 두 부부 사이를 더 긴밀하게 연결하는 고리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나 닮은 딸을 낳은 아내는 정말 사랑스러웠을 것이다. 아버지가 철저하게 지켜야 할 가족의 일원이 되어 생명의 유지를 담보 받았을 것이다. 생존과 번식을 목표로 하는 이기적인 유전자의 빅피쳐다. 

옛사람들은 유전학은 몰랐지만 유전자가 남자는 XY, 여자는 XX라는 것을 은연중에 알았는 것 같다. 옛날 원시인들은 모계사회라고 했지만 어느새 부계 사회가 되었다. 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되었다. 그런데 남자아기는 아버지의 성만 따르는게 아니라 그 아버지가 가진 유일한 Y염색체도 가져간다는 것이다. 여자아이가 가져 갈 수 없는 유일한 Y염색체를 아들은 가져갈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성씨에 따른 염색체의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아들은 외형상 굳이 아버지를 닮지 않아도 자신의 생존에 대한 보호를 태어날 때부터 받았는지도 모른다. 이기적인 유전자는 영리하게도 남자 아이는 자신의 유일한 염색체 Y를 전달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생김새와 별개로 그들에게 생존의 이유를 만들어 준 것 같다. Y염색체를 보호하라는 이기적인 유전자가 명한 내밀한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그 오랜 역사 동안 왕들은 아들을 낳기 위해 후궁을 죽이고 여인들은 아들을 낳기 위해 씨받이 부터 수많은 수치와 굴욕을 당해야 했던 걸까?

외형의 드러나는 유전자를 가진 장녀도 아니고 숨겨진 유전자의 핵심인 Y를 가진 아들도 아닌 차녀에게 이기적인 유전자는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는지 이쯤되니 물어보고 싶다.

그러면 차녀는 모계 유전자 즉 엄마의 유전자 몰빵이라는 혜택을 주어야 한다. 그렇다. 난 엄마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뽀글 파마와 나의 심각한 곱슬머리가 이기적인 유전자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년 후 유전자의 힘이 발현되었을 때 아니 엄밀히 말해서 엄마의 유전자가 발현되었을 때 어떤 모습인지를 알려주는 존재가 나타났다. 그렇게 생각하면 2년의 유예기간은 나에게 행복한 시기였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닮았다고 하기엔 어설픈 까무잡잡함과 어머니를 닮았다고 하기엔 애매한 얼굴형을 가진 내가 둘 중 누군가를 닮았겠지 막연한 기대 속에 살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버지 유전자 몰빵의 언니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 다름의 이유가 눈이 작고 얼굴이 넓고(이건 아버지의 유전자의 힘인데) 곱슬머리에 숱이 적다는 이유로 이렇게 적어보니 조금은 안습한 외모의 아기를 어머니를 똑 닮았다고 모함할 수 있어서 내가 행복한 만큼 행복했던 시어머니의 빅피처였는지도 모른다. 가따나 차녀라 늘어난 입이라고 여겼는데 그 얼굴까지 자신의 아들의 얼굴과 거리가 있어서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미워할 수 있는 이유를 다분하게 가질 수 있으니 말이다. 정말 미워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와 나의 엄마를 구박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 명분은 되었을 것이다. 

난 엄마 닮았다는 막연한 생각에 행복했고 엄마 닮아서 구박할 수 있었던 할머니도 행복했던 시기였다.

그런데 2년후 홀연히 나타난 존재로 나의 행복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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