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애

村愛

by 마이진

들어가는 말



우리는 시골 할머니 댁을 촌애라고 부른다. “촌애에서 밥 먹자.” “촌애에서 고구마 구워 먹자.”, “촌애에서 자고 가자.” 그것은 처소나 지향점 따위를 나타내는 부사격 조사를 사용한 촌‘에’가 아니다. 이건 명백히 세상에 없는 단어인데 우리들은 겨우 맘마- 어부바- 하며 입을 옹알대던 때부터 사용해 왔다. 빨간 밑줄이 죽죽 그어지는 세상에는 없는 단어. 우리가 아닌 사회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단어. 그래서 우리는 촌애(村愛)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시골 촌 자에 사랑 애자를 썼다. 하필 ‘애’라서, 하필 ‘사랑 애’라서 우리는 우리만의 단어를 너무 쉽게 만들 수 있었다. 원래 세상에 있었던 말처럼, 원래 그렇게 사용하는 단어인 것처럼. 사랑하는 우리의 시골집. 그렇게 촌애.


우리는 사랑하는 시골인 촌애에서 나고 자랐다. 지금 그때를 되돌아보면 인생의 유년기를 그곳에서 보낼 수 있었음이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했는지 안다. 그 시간들은 나의 커다란 기둥이 되어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야속하게도 촌애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줄어들고, 언젠가 촌애가 내 곁에 남아있지 않게 되더라도 나의 뿌리는 영원히 그곳에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우리는 처음부터 촌애에 심기기 위해 길러진 어린 모종들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른들이 작고 여린 모종들을 촌애라는 영양분 가득하고 드넓은 땅에 옮겨 심어주신 것이지. 그래서 나는 영원히 그곳에 뿌리내릴 수밖에 없다. 그곳이 나의 땅이고 세상이니까!


인간의 망각은 신이 주신 선물이자 축복이라지만 과연 정말 그럴까? 촌애와 망각을 동시에 떠올리면 선물 받기 싫어 크리스마스에 억지로 눈물을 짜내는 이상한 아이가 되고 싶다. 그렇게 마트에 드러누워 떼를 쓰는 쇼를 해서라도 그런 축복은 받고 싶지 않다. 촌애에 대한 망각은 곧 재앙이다. 소리 없이 찾아오지만 남몰래 혼자 몸을 불려 가며 나를 덮치려 하는 눈덩이 같은 재앙. 그렇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오, 망각한다는 건 백날을 울어도 바뀌지 않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글은 재앙을 대비하며 쓰는 망각 취약 기억 집중 관리 지침서이자 망각에 대한 재앙대비행동요령서가 될 거다.


공든 탑은 쉬이 무너지지 않지만, 아주 작은 구멍은 거대한 댐도 무너트릴 수도 있는 법.

아주 작은 구멍도 없이 촌애에 대한 모든 기억을 샅샅이 꺼내어보려 한다.


이 글을 사랑하는 신숙자 할머니와, 사랑하는 이두종 할아버지께 바칩니다.

그리고 영원할 숙자 클럽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