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역에서 10시발 동대구행 고속열차에 올랐다.대구로 가는 것은 1박2일간의 '무등회'모임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무등회'는 광주 무등산 정기를 받으며 야전공병단에서 45년 전에 함께 근무한 전우들의 자발적인 모임이다. 한때 같은 부대(部隊)에서 근무했다는게 무에 그리 대단한 인연이라고, 4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마다 모여서 정을 나누는지 신통방통하다.당시 야공단장이던 이홍배대령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무사공평한 사랑으로 하여 가족같은 정이 가슴깊이 각인되어있는 까닭이리라. 전임자의 너무나 바르지 못한 지휘가 미친 영향도 클 것이다.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도 맑아짐을 확실히 알게했다.
'무등회'를 생각하면 특히 잊히지 않는 후배 두사람이 떠오른다. 수십녀전 국민학교 동기동창회를 지리산자락 남원에서 갖기로한 적이 있었다. 부하장교였던 노중위(당시계급)가 남원에 터잡고 있었으니까 가는길에 만나고싶어 알렸다. 남원역에서 기다리던 노중위의 승용차로 숙박할 여관으로 갔는데, 여관에 이르자 깜짝 놀랐다. 여관 정문에, ''환영 마산회원국민학교 제10회 동창회''라는 커다란 글자를 새긴 높다란 아치가 세위져 있다. 친구들이 놀라 야단이 났다. '내가 특별히 노중위한테 잘해준것도없는데. 남들처럼 그저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재밋게 지낸게 전부인데 뭐'.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교육자 집안에서 올곧게 자라서인지 자존심이 강하고 강직한 엄중위는, 대령으로 전역후 한의학을 공부하드니 노인들에게 의료자원봉사를 하고있다. 내 아내가 관절염과 당뇨등으로 고생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대전에서 용인까지 나를 찾아와서 쑥뜸이며 물리치료를 하고, 내가 해야할 일을 자세히 일러 주었다. 그 이후에도 몇차례 더 다녀갔고, 내게 잔소리도 수월찮게 했다.
나는 조건없는 베풂을 받기만하니, 법도에 어긋남은 아닌지, 내게 인덕(人德)이 사주(四柱)에 있는가?
동대구역에서 회원들을 만나, 중식.커피타임.45년전 왁자지끌한 이야기... 즐거웠다. 팔공산 유스호스텔에 여장을 풀고는 간단한 산행, 간지럽게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오솔길을 택해서 한시간쯤 걸은것도 좋았다. 준비한 작은 우산으로는 옷이 젖는걸 막지 못했지만, 산불을 생각하니 옷젖음은 아무렇지 않다. 경사지의 굵은 나무뿌리는 땅위로 솟아올라 흘러내리는 토사를 담아서 내게 계단을 만들어주니 고맙다.
우리 세 고참에게 배당된 방은 두방향으로 널다란 창이 나 있고, 밖에는 산벚나무가 연붉은 꽃을 활짝 피우고 우리를 반긴다. 사람에게 길들여지고.다듬어진 도로양쪽에, 간격과 줄을맞 춰 가지런히 늘어선 벚나무와는 달리, 스스로(自) 그러하게(然) 다른 이웃과 더불어 자라서 곱게 꽃비운 네가 더욱 정겹고 이쁘구나.네가 만개한 때에 내가 찾아온거니, 아니면 내가 찾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내가 오니까 피었니?
오랜만에 침대가 아닌 온돌방의 따사로움이 엄마품을 그립게 하는구나.
저녁에는 무대며.음향장치며.넓은 공간이 있어서,식사하고.술마시고.옛이야기하며 한껏 즐겼다. 끝내는 모두가 어우러져서 춤추고 노래했다.
이 나이에 젊잖지 못했나?
아니지. 내 나이가 어때서.
내년에도
내후년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