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씨로는 바람이 차가운 흐린 날씨지만, 기다려온 만남의 기쁜 날이다.
지난 학기까지 노인복지관 수필문학반에서 함께 수학하던 문우 두 분과 만나기로 한 날이다.
나는 80여 평생을 자연과학 쪽에만 매달려, 머리로만 생각하고 가슴으로는 생각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인생이었다. 인문학 쪽으로는 교과서내용 말고는 공부도 안 했고 관심도 없었다.
그러던 내가 지난해에 우연히, 아니 요행히 수필문학반에 인연이 닿아 중간 보결생으로 함께하게 되었다.
이게 웬일인가, 내게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져서 못 보던 게 보인다. 하찮게 보이던 것이 곱고 귀하게 보인다. 자연이 내게로 다가와 산책길에 이들과 만나 인사를 나눈다. 내게 이런 가당치도 않은 감상이라니!
이는 오로지 수필반선생님의 자상하신 지도와, 수필반 문우 여러분의 따뜻한 격려가 내게 안겨주신 늦복(福)이다. 고맙고 감사한 문우 두 분과의 몇 달만의 만남에서 두 시간 남짓 나눈 정담은, 살가운 정을 느끼게 했다.
다음 만남을 약속하고, 흐뭇함 한 가슴 안고 집으로 향하는 길은 룰룰루 랄랄라 ㅡ.
상갈역에서 마을버스를 탔다. 버스 앞쪽 위 전광판에 안내문 글자들이 바쁘게 굴러가고 있다.
*버스이용 예절* *자리양보하기* *노약자. 장애인. 임산부가 서 계시면 자리를 양보합시다*
우리 모두가 동의하지 않을 거 같아 조금 씁쓰름하다. 지금을 사는 젊은이들에게 바라서는 안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다음 정류장에서 백발 어르신이 지팡이를 짚고 오르신다.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며 앉으시란다.
할아버지가 사양하니까, 안쪽에 앉아있던 청년이 일어나서 할아버지를 모신다.
도로 앉는 할머니에게 나는 쌍엄지 척.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폭포같이 우렁차게 쏟아낸다. 내 대꾸 따위는 들을 필요도, 듣고 싶지도 않은가 보다. 일사천리다.
*요새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해 달라면 안 돼요. 우리야 힘든 일도 바쁠 일도 없지만, 젊은이들은 너무 힘들고 바빠요. 나 같은 늙은이가 양보해야 해요. 그리고 우리 늙은이들은 러시아워나 학생들 등하교시간은 피해서 다녀야 해요. 노인에게 자리양보 않는 젊은이나 학생을 나무라지 마세요....*
할머니의 앞 좌석에 앉아있던 젊은 남녀가 벌떡 일어나고, 그 자리에 서있던 다른 승객이 잽싸게 앉았다. 젊은 남녀가 내릴 때가 되었나 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들은 앞쪽으로 나가더니, 남자젊은이는 바닥에 펄썩 주저앉고 여자젊은이는 손잡이를 잡고 섰다.
정류장 몇 개를 지나도 내리지 않고 그대로다.
젊은 남녀는 왜 일어났을까? 할머니의 말을 듣고 젊은이로서 미안함을 느껴서 일가?
젊은이들을 싸잡아서 욕하는 꼰대의 잔소리를 듣다 듣다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에이 C....?
교통약자에 대한 배려를 젊은이들에게 기대하는 건 이제 버려야 하는 캐캐묵은 폐습인가?
지하철 안에서 젊은이 앞에 서서 *에헴* 헛기침을 하며 압력을 가하는 늙은이는 어른다운가? 늙은이가 앞에 서면 얼른 눈을 감는 젊은이는 미안해서 그러는가?
그러든 말든 당당하게 핸드폰을 계속하면?
못 본 척, 안 들은 척,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 다물고 꼰대를 면하는 게 상책?
글을 쓰기 시작한 뒤로는 *자세히 보지 않아도, 자주보지 않아도* 모두가 이쁘고 사랑스럽다.
오늘도 참 행복한 하루였다.
룰룰루 랄랄라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