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스트 스토리>를 보고,
갑작스러운 남편 C의 죽음 이후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M. M은 이웃이 남긴 정성스런 파이를 입에 우겨넣는다. 부엌에 서서 몇 숟갈 뜨다가 이내 바닥에 등을 기대고 앉아 말 그대로 파이를 목구멍으로 쳐넣는다. 체감 상 몇 십분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롱테이크로 연출된 이 장면에는 이제는 미망인이 된 M을 바라보는 C, 아니 고스트가 된 C의 영혼이 함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M을 바라보기가 힘이 들다가도 이내 그런 M를 바라보는 C가 보였다. 결국 남겨진 존재란 삶을 떠나보낸 육체 없는 무언가가 아닐까.
C는 죽었지만 저승에 가지 않고 M과 함께 산 집으로 돌아왔다. 두 눈처럼 보이는 구멍만 뚫린 흰 천을 뒤집어 쓴 C의 영혼은 슬퍼하고 그리워하고 다시 지난한 일상을 지나오는 M을 바라볼 뿐이다. C는 육체가 부재하다. 그래서 그것(C)은 음식을 먹을 수도, 생리 활동을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마음 같은 영혼의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억겹의 시간을 보낸다.
(남겨진 존재라는 오해, 떠나가는 존재라는 진실) 반면 남아있는 존재 M은 죽은 C를 과거에 두고 떠나가야 하는 존재이다. 그녀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체를 가지고 있어 밥도 먹어야 하고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 지난한 일상을 극복해내야 한다. 그래야 정방향으로 흘러가는 삶을 견딜 수 있다. 우겨넣은 파이를 다 토해내더라도 매일 집을 나서고 일을 하고 이따금씩 밀려오는 슬픔과 상실감을 온전히 받아내야 한다. 극중 M은 집에 메모를 남겨 본인만 아는 비밀 장소에 숨겨놓는 습관을 간직하고 있다. 집과의 시간을 추억하는 그녀만의 방법이랄까, 집에 다시 돌아가 메모를 본 적이 있냐는 C의 물음에 절대 없다고 답한다.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짐’… 상실이라는 경험을 체화하고 나서 다시 상실을 채워야 하는 실존의 숙명을 가진 우리는 떠나간 존재를 남겨진 존재로 두고 전방에 위치한 시간을 향해야 한다.
(떠나간 존재라는 오해, 남겨진 존재라는 진실) 영혼만 남겨진 존재 C가 덮고 있는 흰 천은 그의 존재를 더욱 무력하게 만든다. 죽은 C를 두고 이승의 사람들은 소위 ‘떠나간 사람’이라고들 한다. C는 떠나가지 못했다. 극 중 이사문제로 M과 실랑이를 벌인 C는 집에 깃든 history 때문에 이사를 꺼려 한다. 상실의 존재를 의미하는 C의 시간은 정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앞뒤로 또는 원형처럼 흐르는 시간의 C는 결국 떠나갈 존재를 소리 없이 바라보고 기다리는 것 밖에 하지 못한다. M이 떠나고 이사온 새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초현실적인(일명 귀신의 소행이라고 생각할만한, 이유 없이 전등이 깜빡거리고 물건이 떨어짐) 행동을 통해 그들을 내쫓는다. 결국 흰 천이 낡고 더러워질 동안 M이 남긴 메모를 보기 위해 억겹의 시간을 보내는 C. 스스로 상실의 존재가 된 C는 기다림의 목적을 소멸하고 나서야(메모를 읽고 C의 영혼은 사라진다) 남겨진 존재에서 자유로워 진다.
살아 있는 존재는 육체를 채워야 하고, 텅 빈 땅을 삶의 터전으로 일구고 집을 채워야 한다. 그렇게 주어진 시간을 채워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 혹은 갑작스레 밀려오는 상실의 존재를 인지해야 한다. 존재와 상실은 공존한다. 존재가 있기에 상실이 있고 상실이 있기에 실체가 존재한다. 결국 죽음이라는 인류 공통의 귀결 지점이 있기에 우리는 메모를 남기고, 음악을 남기고 함께 시간을 보냄으로 추억이라는 역사를 깃들인다. M과 생전의 C곁에 있었던 C의 고스트처럼, M을 기다린 C의 고스트처럼 삶 곁에 늘 죽음이 있고, 죽음의 존재를 인지하는 순간 우리 또한 자유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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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 1의 화면비율로 연출한 이 영화는 프레임의 경계를 흐릿하게 표현하였다. 마치 우리가 고스트가 되어 하얀 천에 뚫린 구멍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렇게 소멸의 여정 앞에 있는 듯한 화면이 롱테이크로 연출되어 기다림의 정적인 시간을 더 극대화하고 있다. 마치 한 편의 시 혹은 뮤직비디오와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 <고스트 스토리>. 판타지라는 장르를 차용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철학적인 이야기에 사뭇 더 몰입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감각적인 연출과 촬영 방식에 흰 천을 둘러쓴 C의 모습은 우습기 보다 어쩐지 결국 남겨진 존재라는 지점에서 더 공허해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내 곁에서 나를 지켜보고 기다리고 있다면? 우리는 흔히들 죽은 사람이 항상 곁에 있을거다와 같은 류의 위로를 주고 받는다. 그건 어쩌면 떠나가지 못해 남겨진 존재로서 고스트가 스스로를 위로하는 거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