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에 연봉협상 시기가 다가오면 회사 직원들은 총알을 장전하고 전투모드로 전환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이번에 나는 이만큼은 지를거예요!’ ‘최대 00%까지는 올릴꺼 예요!’라고 칼을 뽑은 이들의 결의가 들려온다. 가만히 듣던 나는 ‘연차가 쌓였다고 연봉을 왜 많이 받아야 하지?’ 라는 질문을 스스로 삼켰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은 여러가지가 있다. 먼저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업력 13년차의 중소기업으로 현재까지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루고 또 성장궤도를 달리고 있지만 일종의 구조적인 리스크를 직면한 상태이다. 신입은 부족하고 중간관리자는 많은 조직구조를 취하고 있어 인건비 지출이 심하다. 또한 COVID-19 수혜라는 특수상황으로 인해 2021년은 최대 매출액을 기록하였고 아마 당분간은 이 수치를 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나를 포함한 일명 고인물들이 넘쳐나는 상황인 것이다..
MZ세대의 특징은 회사와 본인을 분리하고 자기 중심의 가치 추구를 실현하는 것이라는데 92년생인 나는 연봉협상을 앞두고 왜 경영자의 마인드를 취하고 있는지 스스로 소름이 끼친다.
드디어 협상 날이 다가왔고 내 예상 혹은 바람(?)대로 선임 2년차라는 연차와 인사고과를 바탕으로 연봉이 책정됐다. 현재까지의 협상 중 최저 인상률 이었다.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기 때문에 크게 투쟁은 하지 않았고 오히려 연차가 낮은 후배 사원들은 나보다 더 대우가 좋아야 할텐데.. 라는 오지랖까지 부리고 있었다(?)
협상을 하고 나니 위에 나의 질문(연차가 쌓였다고 연봉을 많이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한 가지 더 스쳐 지나갔다. 2018년에 입사한 나는 사실 그 때나 지금이나 하는 일은 큰 변화가 없다. 다만 혼자 처리하는 사업의 개수가 늘어났고 의사결정의 순간이 더 많이 생긴것 뿐이다. COVID-19로 인해 해외 업무가 완전히 스탑되면서 업무의 다양성은 더 줄어들었다. 지난 1년 동안 회사는 수치적으로 많은 성과를 이루었지만 나는 그냥 내 자리에서 관성적으로 업무를 처리 했을 뿐이다. 하, 이렇게 고인물이 된 것인가.. 2021년 나는 언젠간 지금보다 더 좋은 기업으로 이직할꺼야!라는 생각으로 승진 심사를 거절해왔고 계속되는 권유와 장고 끝에 현재 있는 곳에서 최대한 도전을 해보자라는 다짐으로 심사를 받았다.
선임 2년차, 다시 일태기에 빠졌다. 다음 스텝은 뭐지, 부팀장? 팀장? 이런식으로 계단을 밟기는 정말 싫었다. 중년의 위기같은 어떤 위기의식이 미친듯이 내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협상이 끝나고 난 팀장과 기나긴 면담을 나눴다. 어차피 회사의 일은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일 것이고 고인물 속 개구리가 계란으로 벽을 치는 격이라고 해도 당장의 권태를 극복하기 위해 사직서를 던질 용기는 없으니 조직 속에서 내가 변하기로 했다.
여태 내가 두려워하고 피했던 일들에 기꺼이 나를 던지기로 했다. 응대가 힘든 고객사와 독대를 한다던가 등의 사소하지만 그간 꺼려했던 일들도 말이다. 직장생활과 나를 철저히 구분하는 MZ세대 사이에서의 애매한 갈등은 포기하고 내 하루의 절반 이상을 투자하는 회사에서 최대한 뽑아(?)먹고 자아실현을 이루는 고인물이 되기로 했다. 우물 안 개구리로 빠져 죽을 운명이라도 뜀박질은 해 봐야지.. 아.. .. 내일 출근하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