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명상/그 복숭아 나무 곁으로/나희덕

by 이강선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 나희덕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 꽃과 분홍 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 꽃과 분홍 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가만히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화곡동은 빌라 동네입니다. 빌라마다 나무를 한두 그루 혹은 몇 그루씩 갖고 있지요. 법이 그렇게 정한 모양입니다. 건물을 지을 때 좁은 화단에 때로는 주차장 한 켠에 나무 두어 그루를 심습니다. 나무 종류는 참 다양합니다.


집 앞 골목을 걸어 성당 쪽으로 올라가면 모퉁이 빌라에 복숭아나무가 있습니다. 빌라 담벼락에 바싹 붙어 피어 있는 그 꽃을 처음 보았을 때는 몹시도 경이로웠습니다. 무어라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거든요. 소박한 벚꽃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벚꽃이 모여 피어야 아름답다면 복숭아꽃은 한 송이만으로도 벚나무 여러 그루를 능가하고도 남았습니다.


꽃잎의 각도는 날카로웠고 꽃잎은 흰빛에서 시작해 분홍빛으로 짙어지고 있었습니다. 중앙의 선명한 분홍빛 가운데서 수술들과 암술이 돋아나 완벽한 세계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들여다보고 나서야 왜 복숭아나무가 있는 곳이 무릉도원인지 왜 그 빛을 도화색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도화는 그냥 도화가 아니었습니다. 이후 봄마다 꽃이 피기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빌라의 그 좁은 화단에도 도원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참 기꺼웠습니다.


시인도 저 같았던 모양입니다. 복숭아나무가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것이라고 한 걸 보니 말입니다. 꽃이 너무 아름다워서 사람 아닌 선녀가 혹은 손오공이 앉아야 할 그늘 같다고 여긴 모양입니다. 전설 속의 존재들이 금방이라도 걸어 나올 것 같은 그런 그늘을 보았던 듯합니다.


전설이란 참 묘합니다. 내용은 인간세계를 벗어나지만 그 뿌리는 인간세계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전설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니까요. 수없이 많은 전설을 딛고 서 있는 존재가 오늘의 우리고 그 전설은 또 다른 전설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으니까요. 인간은 꿈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니까요. 그러므로 복숭아 꽃잎의 흰빛이 중심의 분홍빛이 되기까지는 수천 가지의 빛깔이 필요합니다. 흰빛에서 분홍빛까지. 동일해 보이지만 결코 동일하지 않은 우리의 꿈들, 마음들, 생각들. 너무도 다양한 수천 가지의 빛깔이 필요합니다.


그 꿈을 살아내려면 외로워야 합니다. 삶은 참 모순적입니다. 외로워야 하나의 빛깔을 이룰 수 있고 그 빛깔을 일구어내야 타인과 동일한 인간임을 알아차릴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렸을까요. 그 세월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색깔이 다소 심심하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건 통찰입니다. 전체를 보는 그 통찰이 저녁에서야 온 것은 당연한 일일 겁니다.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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