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아주 하찮은 일 하나로 짜증이 났습니다. 설거지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 하나로요. 그리고 연달아 다른 것들이 보였습니다. 늘어져 있는 재활용품, 또 다른 것이 눈에 띄었지요. 물을 주지 않아 늘어진 화초잎.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 연달아 눈에 띄었던 겁니다. 평상시에는 아무렇지도 않았을 그 일들이. 드디어 입 밖으로 불평을 꺼내고야 말았지요. 이내 후회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화가 날 때 혹은 짜증이 날 때 그 감정을 당연시하고 그 감정을 정당화합니다. 평상시에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문득 화가 나면 거기에 이유를 갖다 붙이는 것이지요. 그리고는 화를 밖으로 이끌어냅니다. 화에는 짜증에는 놀라운 폭발력이 있습니다. 에너지가 있어 한번 불붙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지요. 오죽하면 화를 활화산에 비유할까요. 내친김에 끝까지 밀고 가기도 합니다. 그 에너지가 크면 클수록 후회도 크지요. 걷잡을 수 없어지면 자신과 가족 모두를 파멸시키기도 합니다.
제 안에는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피곤하다는 것을 당연시하지요. 그러나 저만 그럴까요? 가족들은 다른 일로 인해 피곤하고 또 스트레스받고 있습니다. 각기 다른 상황으로 인해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지만 그 사실을 자신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가족이라 해도 알 수 없는 것이지요.
그 이유를 알았을 때 얼마나 부끄러운지요. 조금 전 화는 온데간데없습니다. 감정은 약 30초에서 60초간 지속된다고 합니다. 그 짧은 시간만 지나면 수그러드는 것인데 그 순간이 어쩌면 그리도 긴지요. 감정이 내게 찾아오고 사라짐을 말하는 아주 좋은 시가 있습니다.
여인숙/ 잘랄루딘 루미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들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중략-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었지요. 그건 깨달음이었습니다. 아 인간이라는 존재는 늘 이러한 감정에 시달리지. 매일 매시간 감정을 느끼면서도 그 감정이 들고 난다는 것을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지금도 이 시는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위안을 주고 있을 겁니다. 오늘 아침, 이미 잘 알고 있는 시인데도 불구하고 또다시 멈추었으니까요. 그리고 또다시 위안을 얻고 깨달음을 얻었으니까요.
어느 집
그렇지요.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입니다. 다양한 손님들이 드나들지요. 그 손님들은 감정이고 생각이고 깨달음입니다. 감정과 생각은 쉽게 손님으로 분류가 되지만 깨달음이 손님으로 분류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군요. 감정과 생각은 아주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어떤 감정은 생각 때문에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급속하게 떠오르지요. 아주 오랫동안 그 생각이 감정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습관이 되어 있다면 그 생각은 자동적으로 번개보다 빨리 감정을 불러일으키니까요.
감정이 없다면, 생각이 없다면 우리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요? 어쩌면 감정과 생각은 깨달음을 가져오는 방편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의식 안에서 일어나는 일. 우리는 매번 배우고 깨닫습니다. 감정으로 인해 생각으로 인해. 그렇다면 이들, 감정과 생각, 깨달음, 모든 손님은 저 멀리에서 보낸 안내자들인 것이지요. 기쁨을 주는 안내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