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대영 Dec 31. 2019

#11 H에게

저는 기자입니다. 기자.

조금만 더 친절해지자면,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에게 상장사가 가진 투자 위험과 그와 관련한 온갖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하죠.

H,

물론 시장질서를 흔드는 데 노력도 합니다. 이미 흔들리는 시장을 제가 흔든다 하여 지금 흔들리는 게 내가 흔드는 건지 내가 흔들리는 건지 알 수 없으니 말예요.

나는 힘껏 흔들었다 싶어도 알고보면 제자리에서 점프한 것과 다를 바 없을지 모르죠.

그렇게 1년이 지났습니다.

H,

나는 뭘 한 걸까요. 내가 혼돈의 질서 속에서 역할이 있었을까요. 혼돈의 질서. 참 역겹군요.

하루가 일주, 일주가 한 달이 된다지만 글쎄요. 어차피 손만 씻고 흘려버린 물이나 똥물이나 결국은 하수처리장에 한데 모여 검은물을 만들지 않던가요.

좋을 기사를 썼고 그렇지 않은 기사를 썼다 한들, 어차피 나는 오물인 거에요. 아시겠어요?

H,

오늘은 일년의 마지막 날이에요. 날이면서 밤이죠.

1월 1일을 쉬는 이유는 어쩌면 물리적으로 지난해와 올해의 간격을 조금이라도 만들어내기 위함 아니겠어요.

내년은 그래도 더 희망적이에요. 목표가 명확하니 말이죠.

어쩌면 목표가 명확해서 불행할는지 모르겠지만요.

전 오늘도 여전히 듀크조던의 연주를 들으며 잠을 청할 겁니다. 해피 뉴 이어.

작가의 이전글 #1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