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으로 도피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by 불량아빠

"1년, 육아휴직 사용하겠습니다"


현재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 첫 남자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남성 육아 휴직 장려'라는 플랜카드가 동네 가장 큰 사거리에 버젓이 걸려있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수십 명 규모의 조직에서 내가 첫 사례인 것을 보면 아직은 남성과 육아 휴직이라는 단어는 심히 어색한 조합인 게 틀림없다. 모두의 어색함을 깨고 1년 간의 육아 휴직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냈을 때 대부분의 반응은 이러했다.


'용기 있는 결정이에요. 아이를 정말 사랑하시는군요'

'아이가 너무 좋아하겠어요! 좋은 추억이 되실 거예요'


좋은 의도가 담긴 말을 듣고도 마음 편히 웃지는 못했다. 그들의 따뜻하고 상냥한 말이 나에게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내 마음의 절반은 희망찼고 절반은 절망적이었다.


나(我)


26살의 나이에 창업이라는 선택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시절 단순히 스펙 쌓기를 위해 참가했던 창업 공모전에서 몇 번 당선된 적이 있다. 직접 써 내려간 기획안들이 실현될 수 있다는 가능의 열병에 시달렸고 누군가와 0부터 함께 쌓아나가는 과정에 매료되었다. 그 길로 자연스럽게 스타트업 창업이라는 원대한 꿈을 꾸었고 3년이라는 시간 끝에는 극심한 번아웃과 포기라는 결과를 맞이했다.


29살 12월이었다. 서른을 앞둔 나이에 조바심이 났다. 더 빠른 가는 길이라며 열심히 뛰어갔던 길을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걸 깨달아버렸다. 앞서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따라잡기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스스로를 더 몰아세웠다.


30살 운이 좋게도 초기 스타트업의 9번째 멤버로 합류하여 100명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 했다. 이후 총 두 번의 상향이직을 겪으며 6년이 지났다.


35살, 현재는 좋은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훌륭한 동료들이 있다.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반겨주는 사랑스러운 아내와 아이()도 있다. 예전보다 많은 것이 완벽에 가까워졌지만, 다시 한번 번아웃이 찾아왔다.


인생에서 나(我)라는 존재가 사라졌다.


육아(育兒) 말고, 육아(育我)


사실 나는 오롯이 아이와의 시간만을 위해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았다.

육아휴직이라는 핑계로 그저 잠시 쉬며 나를 되찾고 싶은 불량스러운 마음이었다.


브런치스토리는 불량한 마음가짐으로 남들과는 다른 육아(育我) 휴직을 사용한 이야기를 남겨보고자 한다.


1년이라는 시간이 아이와 나를 돌보기에는 온당한 시간일지는 모르겠다.

대신, 아이가 하나의 존재로 성장하는 속도를 열심히 따라잡기 하는 나라는 존재가 되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