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죄책감

행복을 유보하는 우리

by 나몽


한국인들이 유독 좋아하는 말이 있다. “고진감래”

사전적 의미는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 “,

즉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는 인과관계성이 담긴 사자성어이다.

한 개인의 성장 관점에서 보면, 고난을 경험하고 내면의 단단함을

쌓아가는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 분명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고진감래라는 하나의 원리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변수들의 향연이다.

이 원리에만 기대어 인생을 살다 보면, ‘단 것’을 무한히 유보한 채 ‘쓴 것’만을 참고 견디는 삶이 되어버릴 수 있다.


행복.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행복할 때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죄책감 같은 감정을 느꼈다.


10대에는 좋은 대학을 가야 하니까 지금은 행복할 수 없었다.

대학 때는 취업을 해야 하니까,

사회인이 되어서는 뒤처지면 안되니까,

끊임없이 행복을 유보해 왔다.


고진감래의 공식대로라면, 나는 이제 행복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여전히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아직 부족하다고, 더 노력해야 된다고 말한다.

이 말도 안 되는 경기를 나는 계속했다.

그걸 스스로 알면서도, 게으른 사람,

의지박약인 사람으로 보이기 싫어서 스스로를 더 몰아붙였다.

현재에 만족하는 법은 애써 외면했다.


이것이 개인의 욕심이라고 하기에는

한국 사회가 가진 문화적 맥락의 그림자가 짙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계속해서 행복을 유보하는 법을 교육받으며 자라온 것만 같다.


행복을 유보하기까지 30년.

너무나도 긴 시간이다.

이제는 행복을 만끽하기로 한다.

순간을 가득 차게, 온전히 느끼며, 감사한 마음으로 지금을 살아내기로 한다.

눈에 보이는 스펙과 조건, 성과로만 자신을 증명해 내는 삶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나도 쉽게 경시해 버리는, 사랑과 감사, 그리고 친절 같은

그런 영원한 가치들을 살아내면서 말이다.


행복은 반드시 쓴 것 뒤에만 오는 게 아니다.

행복을 항상 노력으로 사지 않아도 된다.

이미 우리 매일의 일상 속에 있으며,

우리의 존재성에 있다.


행복하기 위해 지금을 희생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복하기에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고 싶다.


고생 끝에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 끝에 또 다른 행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