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기억의 해석권이 있다
정체성이란 나 자신에 대한 신념이자 판단이다.
나를 둘러싼 환경, 사람 그리고 경험은 타의든 자의든 한 인간의 삶과 내면에 깊이 관여한다. 어떻게 보면 인생은 선택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어,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형성당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 속에서 나를 정의하는 결정적인 열쇠는 결국 나 자신에 대한 기억이다.
내가 어떤 경험을 했든, 그 경험에 어떤 정의를 내리느냐가 곧 나를 만든다. 정체성은 오로지 과거와 현재 속의 나에 대한 해석이다.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 미래가 직접 관여하지는 않지만, 과거와 현재의 영향을 받은 정체성은 미래의 방향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가 걸어온 과거와 현재를 올곧게 잘 해석해야만 미래의 더 나은 길로 갈 수 있다.
이는 과거와 현재를 무조건 미화하거나 허영심으로 채우라는 의미는 아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닫기도 하고 슬픔도 온전히 느낄 필요가 있으며 분노할 줄도 알아야 한다. 현실 속에서 우리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때론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특정 경험들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서, 그 기억을 후회로 가득 채우거나, 타인을 향한 의미 없는 분노로 덮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제대로 매듭짓지 못한 마음은 우리를 오래 괴롭히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라도 지난 시간들을 건강하고 올곧게 해석하기 위한 연습을 해야 한다.
누군가는 멘탈관리라 부를지도 모른다. 맞다. 운동을 하면서 체력관리를 하듯 우리의 멘탈도 스스로 관리해 줄 필요가 있다. 내가 걸어온 모든 순간들 속의 나를 수용해 주고 존중하는 것은, 결국 미래의 나를 위한 영리한 태도이며, 정체성의 단단한 뿌리가 된다.
가령, 과거에 도전했던 시험이 일상에 뒷전이 되어 흐지부지 되었다고 치자. 과거의 내가 의지박약이었던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대신 바쁜 생업 가운데서도 전문성을 쌓고자 도전해 본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앞으로의 길에 다른 동력을 준다.
또는, 누군가에게 상처받았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누군가가 나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경험은 깊은 상처를 남기고, 때로 ‘내가 부족해서 그랬을까’라는 자책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기억일수록 단호하게 소화해야 한다. 내가 귀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 경험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상대가 미성숙한 인간인 거다. 나 또한 나의 미숙함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 수도 있다.
어떤 기억은 곱씹으며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만, 우리를 괴롭히는 대부분의 기억들은 그 무게를 덜어낼 필요인 경우가 다반사다. 음식을 먹다 모래를 씹었다면, 그저 뱉어버리면 그만이다. 그 불쾌함을 내면으로 돌리거나 오래 간직할 필요는 없다.
기억에 대한 능동적인 해석은 단순한 자존감 높이기가 아니다.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할 수 있고, 미래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자아의 조각이자, 건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