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발명한 감정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없다면

by 나몽


세상에는 참 쉽게 익숙해지는 것들이 많습니다. 매일 아침 마시는 향긋한 커피, 안락한 집, 사랑하는 이들까지. 감사하고 좋은 것들은 어느새 우리의 일상 속에 녹아들어 소중함을 망각하게 하곤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 외로움‘입니다. 어디선가 불쑥 찾아와 마음을 뒤흔드는 이 감정은 매번 낯설고 날카롭습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집니다. 우리 인류는 언제부터 이 감정을 ‘외로움’이라고 정의하기 시작했을까요?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19세기 산업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loneliness’라는 단어는 지금처럼 흔히 쓰이는 단어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공동체 중심의 사회에서 점차 개인주의 사회로 변모하면서 군중 속의 외로움을 표현할 단어가 필요해졌고, 그 결과 loneliness는 현대사회의 흔한 표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인지심리에서는 모국어의 어휘 존재의 유무에 따라 지각능력이 크게 달라진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초록과 파랑이 한 단어인 경우, 둘 간의 상이한 지각이 어려워지는 것처럼 말이죠.


만약 우리에게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산업혁명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아직도 생소한 표현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사람들은 사회적 규범과 매스컴이 부추긴 외로움의 부정적인 면을 알지 못했을 거고 그 결과 외로움 때문에 사람들이 덜 힘들어하진 않았을까요? 또는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더욱 다양한 단어로 분할되었다면, 지금 우리가 느끼는 이 모호한 ’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또 어떻게 지각될까요? 정체불명의 안개와 같은 이 감정은 조금 덜 답답하게 느껴졌을까요?


우리가 쓰는 어휘에 따라 감정의 지각이 달라진다면,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어의 틀 안에 갇혀 내 감정을 정의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에 대한 능동적인 해석을 통해 어휘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죠.


인간은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성장하고 살아갑니다. 생각을 교류하고 마음을 나누고 함께함을 통해 안정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디폴트 값이라고 여긴다면, 외로움은 그 디폴트 값이 어긋날 때 생겨나겠지요.


하지만, 외로움은 결코 고립된 상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어떠한 소통보다도 솔직하고 적극적인 자기 자신과의 교류 상태이죠.


나와 내가 온전히 마주하는 지점에서 오는 존재감의 확인은 희열을 불러일으키고 한 자아를 빛나게 합니다. 타인의 관심에 기대어 존재감을 확인받는 방식에서 벗어나, 선택적 외로움 속에서 묵혀두었던 감정들을 소화해 내고, 심연의 기쁨과 고통을 마주하다 보면, 어느새 단단해진 나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 삶의 챕터마다 외로움이 불쑥 찾아올 때, 덜컥 겁먹지 말고 또는 소외되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를 위해 마련한 self-date라고 생각하는 건 어떨까요. 그 누구와의 대화보다도 훨씬 더 밀도 높은 대화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