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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해 Apr 04. 2022

민주주의를 조롱한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나의 무지를 알고 여러 사람들과 끊임없는 검증을 통해 성찰하는 삶




가장 훌륭한 양반, 당신은 지혜와 힘에 있어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명성이 높은 국가인 아테네 사람이면서, 돈이 당신에게 최대한 많아지게 하는 일은, 그리고 명성과 명예는 돌보면서도 현명함과 진실은, 그리고 영혼이 최대한 훌륭해지게 하는 일은 돌보지도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게 수치스럽지 않습니까?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크리톤을 읽었어요. 시카고 대학 서적 목록에 있었는데,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고 보니 크리톤도 같이 있는 거 아니겠어요. 약간 속은 느낌이었지만 덕분에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두권이나 읽었네요. 두 번째 책에는 변명과 크리톤이 붙어있었거든요.


소크라테스는 학생 때 배웠지만 이렇게 소크라테스가 길게 말하는 걸 본 적은 없었어요. 소크라테스라고 하면 깨달음을 얻은 '성인'이라는 느낌이 있잖아요. 뭔가 어른스럽게 말할 줄 알았는데 직설적인 화법에 아주 놀랐답니다. 친근한 동네 아저씨 같아서요. 처음엔 '헉!'스럽다가 읽을수록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자님께서 소크라테스를 '삐딱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과연 그 표현이 딱이에요.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인기 정치인에 의해 황당한 죄목으로 법적 소송을 당해 법정에서 자신이 유죄가 아님을 하나하나 반박하는 내용이에요. 크리톤은 결국 사형을 선고받은 소크라테스가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소크라테스의 친구 크리톤이 소크라테스에게 도망가자고 설득하는 이야기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공자와 마찬가지로 생전 글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들이 쓴 책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500여 명의 아테네 시민 앞에서 진행되었던 재판이기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이야기한 내용이 가장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담겨있을 거라는 주장이 있지요. 이렇게 공개적으로 얘기한 내용 미화되거나 과장되기는 어려우니까요.





소크라테스의 변명(변론)



정치인이었던 아니토스는 멜레토스라는 젊은 시인을 내세워 70세의 소크라테스를 고발했다. 소크라테스의 죄목은 젊은이들을 교육으로 타락시키고, 국가가 인정한 신을 믿지 않았다는 것. 


첫 번째 죄목,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죄는 소크라테스에게 강의를 들은 젊은이들이 불온한 사상을 가진다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대부분 부유층과 기득권층의 자녀들이었다. 소크라테스는 그들에게 돈도 받지 않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 혹은 모두가 동의하는 것들에 대해 검증해보거나 서로의 의견을 들으며 끊임없이 성찰하는 토론을 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를 신이 내린 소명을 다했을 뿐이라고 얘기했다.


이러한 터무니없는 죄목으로 고발당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민주정을 비판하는 철학자였다. 당시 정치인들에게 눈엣가시였다. 어느 날 소크라테스는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는 신탁을 누군가에게 전해 듣는다. 이 신탁이 틀렸다고 생각한 소크라테스는 신탁의 내용을 검증하기 위해 자신보다 지혜로운 사람을 찾기 위해 돌아다닌다. 아테네에서 지혜롭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한 명 한 명씩 만난다. 그런데 막상 만나서 얘기해 보니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그때마다 상대가 지혜롭지 않은 걸 보여 주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크라테스는 더더욱 아테네의 기득권층에게 미움을 받게 된다. 어느 시대나 보통 지혜롭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기득권층이기에 소크라테스는 기득권층의 무지를 입증하고 다녔던 것.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행동이 이러한 재판과 같은 결과를 낳을 것임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검증 과정을 통해 배운 점을 공유한다. "이 사람보다는 내가 더 지혜롭다. 왜냐하면 우리 둘 다 아름답고 훌륭한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은데, 이 사람은 어떤 것을 알지 못하면서도 안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나는 내가 실제로 알지 못하니까 바로 그렇게 알지 못한다고 생각도 하기 때문이다."라고 얘기하며 ‘무지(無知)의 지(知)’를 강조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명망 높은 사람들은 사실상 최대로 모자란 사람들이고, 놀랍게도 그들보다 형편없다 여겨지는 사람들이 오히려 현명함과 관련하여 더 제대로 된 사람들임을 주장한다.


두 번째 죄목, 신성모독죄에 대하여 소크라테스는 인간에 대한 활동들은 있다고 믿으면서 인간을 믿지 않는 사람이 인간들 사이에 있는지, 말(馬)을 믿지 않으면서 말에 대한 활동을 믿는 사람이 있는지 묻는다. 소크라테스는 신에게 소명을 받아 그것을 공유하고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과의 토론을 통해 더욱 견고히 만들어갔을 뿐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에게 그의 죄목에서의 교육은 신령스러운 활동이고, 신령스러운 활동이 있는데 신령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얘기할 수 있냐며 되묻는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이후 500명의 배심원 중 220명은 무죄, 280명은 유죄를 택했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무죄와 유죄 간의 표차가 크지 않음에 대해 놀란다. 


이후 소크라테스는 형량을 제안하는 부분에서 자신은 형을 받을 것이 아니라 시 중앙 청사의 식사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당시 시 중앙 청사에서의 식사는 대단히 영광스러운 특권이었다. 그러다가 은화 1 므나를 가지고 있다며 은화 1 므나를 제안하고, 또 플라톤과 크리톤과 크리토불로스와 아폴로도로스가 보증을 서준다고 하여 30 므나(1억 8천만 원 정도)를 제시한다. 소크라테스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는 투표를 통해 360대 140으로 사형을 받게 된다. 놀라운 것은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들어보면 소크라테스에게 찬성하는 것은 곧 당시의 아테네를 부정하는 일이었다. 소크라테스가 만약 정에 호소하여 재판장에서 이야기를 펼쳤으면 사형까지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어 소크라테스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훌륭한 사람에게는 살아 있을 때든 삶을 마치고 나서든 어떤 나쁜 것도 없으며, 이 사람의 일들은 신들이 안 돌보지 않는다. 죽어서 골칫거리들로부터 벗어난다는 게 이미 소크라테스에게 더 좋은 것이었음을. 그렇지만 소크라테스도 사람이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소크라테스가 믿고 희망을 품었던 조국과 시민들에게 얼마나 섭섭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삐딱한 사회 속에서 균형 있게 세상을 보았다는 이유로 다수에 의해 살인된 소크라테스. 그리고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소크라테스가 너무 외로워 보였다. 그래도 소크라테스의 제자들, 특히 플라톤의 철인정치가 소크라테스에 대한 플라톤의 존경과 애정이 담긴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를 죽인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나를 죽일 때의 앙갚음보다, 제우스에 맹세코, 훨씬 더 혹독한 앙갚음이, 내 죽음 이후에 곧바로 여러분에게 닥칠 거라고 단언하는 바입니다. 여러분이 사람들을 죽임으로써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올바르지 않게 살고 있다고 비난하는 걸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아름답지 못한 생각을 품고 있는 거여서 하는 말입니다."




크리톤



크리톤은 정말 마음이 아픈 책이었다.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 중 누가 더 슬플까라는 논의는 논란이 있지만, 크리톤에서는 크리톤의 애타는 마음이 느껴졌다. 소크라테스는 끝까지 사람다운, 옳은 삶을 실천하기 위해 크리톤의 탈옥 권유를 거부했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와 어렸을 때부터 친한 친구였으며, 부유했다. 자신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재판장에서 소크라테스를 지원해줬다면 소크라테스가 사형까지 받지 않을 수 있었을 거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


크리톤도 어릴 때부터 소크라테스를 봐왔으니 소크라테스의 고집(?)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기에 다양한 근거를 준비해와서 소크라테스에게 도망치자고 권한다.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 등등 다양한 근거를 얘기한다.


하지만 역시나 소크라테스는 다수의 의견에 따라 사는 것이 옳은지 얘기해보자며 다수의 견해보다 전문가 한 사람의 의견이 더 중요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또한 탈옥을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으며, 시민이 합의한 사항은 지키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법률과 시민공동체를 의인화하여 그들과 가상의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주장을 다시 한번 못 박는다. 본인도 참석한 재판의 결과에 불복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암묵적 동의에 의해 조국에 살 것을 맹세했다면 조국의 법을 따라야 하며, 다른 지역으로 도망쳐서 사는 삶은 모두에게 해가 될 뿐이라고. 


크리톤이 소크라테스와 긴 시간을 보내온 만큼 그가 소크라테스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여 온 거 같지는 않았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심정과 소극적인 대처가 친구를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죄책감으로 혼란스러운 크리톤이 안쓰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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