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유난히 깊은 잠을 잤다.
깨어났을 땐 어쩐지 마음이 먹먹했다.
그가 꿈에 나왔고,
그 얼굴이 아직 남아 있었다.
삼킬까 하다가 결국 메시지를 보냈다.
“뭐해?”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마치 오래전 대화를 이어 쓰는 것처럼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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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평범하게 안부를 물었고,
나는 그 평범함에 안도했다.
그러다 갑자기 말이 나왔다.
“나중에 시간되면, 너 상황되면 얼굴 한번 보자.”
순간 멈칫했다.
그 말은 단순한 인사처럼 보였지만,
내 안에서는 조용한 파장이 일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다시 마주 앉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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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되물었다.
“엄청 반가울 것 같아.
근데 뭐, 감정이 생길까 봐 그런 거야?”
나는 천천히, 내 마음을 풀어냈다.
“반가움만은 아닐 것 같아서.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그때의 기억은 따뜻하게 남아 있고,
지금은 서로 달라졌고,
지켜야 할 것도 많아졌고,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잖아.”
그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너와 만나고 나서 감정이 생기면… 모르겠다.”
그 말은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그가 말한 ‘감정’은 미련이나 연애 감정이 아닌,
다시 마주한 순간에 자연스레 피어날 수 있는
정서의 여운처럼 느껴졌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상상해봤는데, 엄청 재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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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화는 깊어졌다.
“지금은 연인 사이가 아니니까.”
– 전에는 감정적으로 얽혔지만,
이젠 그 시절을 좋은 기억으로 남겨두고 있을 뿐이야.
“서로 알만큼 알고, 감정 기분도.”
–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 우리가 서툴렀던 감정과 행동도
지금은 좀 더 능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가 된 것 같아.
“이젠 농익어서 만나는 거니까.”
– 그때와는 다른 결.
이제는 가볍고 편안하게 마주할 수 있는 사이로
다시 연결된 느낌이라고 그는 말했다.
“좀 더 자유롭게 표현도 하고, 성숙하게 대화도 될 테고.”
“어릴 때보다 이야기를 해도 잘 들어줄 테고.”
그 말들이 이상하게 다정했고,
우리가 지나온 시간만큼의 성숙함이 묻어 있었다.
나는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그냥 나오는 말이라고 막 던지기 싫어.
중요한 사람이니까 더 그래야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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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대화를 마친 후,
나는 다시 혼자 생각에 빠졌다.
그의 말이 따뜻했기에,
오히려 궁금한 게 더 많아졌다.
그래서 또 질문을 보냈다.
“그 말은, 우리가 서로 예전만큼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일까?”
“아니면 예전보다 감정이 더 성숙해졌다는 뜻일까?”
“지금 우리가 마주하게 된다면,
그때처럼 감정이 생기는 게 아니라
그때와는 다른 마음이 자라나는 걸까?”
그리고 또,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감정선이 탁 정리되면서
‘이제 됐다’는 마음이 들고,
미련도, 의무감도 없이
홀가분하게 서로를 놓을 수 있게 되는 걸까?
아니면,
완전히 끊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의 거리감에서
가끔 안부 정도는 나눌 수 있는 사이로
조용히 머무르게 되는 걸까?
하지만 그는 아직 그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
내 마음은 이미 도착했지만,
그의 답장은 아직 멈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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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도 나는,
읽지 않은 메시지 하나를 바라보며
내 마음을 정리 중이다.
사실 그가 무슨 말을 해도 괜찮다.
이미 중요한 건 말해줬으니까.
“중요한 사람이니까 더 그래야 돼.”
그 말이면, 오늘의 나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