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 대처하는 자세
우리가 살면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이별들.
외국생활을 앞두고 난 이번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어릴 때 살던 고향, 친구들과의 추억 가득했던 학교, 열심히 다니던 직장, 사랑했던 연인, 하다못해 내가 안고 자던 인형들, 아껴 쓰던 필기구와의 이별에도 아쉬운 순간들이 있다.
무언가로부터 떠난다는 건 그런 거다. 더 이상 내가 원하는 만큼 가까이 두지 못하고 그들에게서 내가 잊혀진다는 사실도 슬퍼지는 것.
나이가 어릴 땐 작은 이별의 순간도 크게 다가와 눈물도 쉽게 흘리고 마음에도 오래 남았다. 어릴 때 시골에서 조부모와 함께 살다가 우리 가족만 서울로 올 때도 매일 날 안고 자던 할머니의 품이 그리웠고, 뛰어다니던 시장통 골목, 개울가 놀이터에 가지 못한다는게 너무 아쉬웠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가지 말라고 말할 땐 그 슬픔이 배가 되곤 했다. 학교를 졸업할 때도 내가 너무 좋아하고 따르던 선생님과의 이별이 힘들었고, 각자 다른 학교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겪는 아쉬움에 추운 겨울 얼어붙은 운동장에서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눈시울 붉어지며 서로 손을 흔들었었다. 짧았든 길었든 만났던 연인들과의 이별도 항상 씁쓸하고 힘들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별에도 굳은살이 베인 것인지 혹자의 말처럼 원래 삶이란 집착을 버리는 과정인 건지, 마흔을 앞두고 외국생활을 준비하는 이 이별에 대해서는 어째 마음이 차분하다. 집도 가족도 친구도 다 놔두고 가야 하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되는 내 마음은 어째서일까?
배낭 하나 훌쩍 둘러매고 세계일주를 떠나는 사람의 마음처럼 가볍진 않다.
아픈 아버지와 친정식구들, 소중한 지인들을 자주 보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치고는 무겁진 않다.
요즘같이 비행기 몇 시간이면 오고 갈 수 있는데 뭐 대단히 걱정이 되겠냐는 안일한 마음도 아니다.
남이섬에 가서 하루를 묵고 와본 사람은 알 거다.
주변이 모두 강으로 둘러싸여 있는 조용한 섬. TV도 없는 숙소에서 하루를 머물고 나면, 다음날 새벽 물안개가 자욱한 광경이 펼쳐진다. 그 시간만큼은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듯한, 뭔가 온전히 자유로워지는 그런 기분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자유로움 속에서 난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시끄럽고 복잡하고 엉켜있는 공간에 사는 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 그런 고립됨을 느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외국에서도 밥 먹고 자고 육아하는 일상생활은 여기와 똑같겠지만, 익숙한 환경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Fresh 함이 명확하지 않을까?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맞다면, 아마 난 이번 이별을 통해 진짜 자유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주변의 시선과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며 내 꿈을 찾는 시간 말이다. 밑그림이 그려져 있는 그림에서는 색칠 밖에 할 수 없지만, 하얀 백지에는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는 것처럼.
지금까지의 이별이 뒤만 돌아보는 이별이라 슬펐다면,
이번 이별은 앞만 바라보는 행복한 이별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