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는 전략, 중장년 재취업의 실질적 무기
퇴직 후 가장 먼저 부딪히는 현실은 생계다. 연금과 퇴직금이 있다고 해도 생활비와 의료비, 그리고 불확실한 노후 지출을 고려하면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요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50세 이상 구직자의 재취업 성공률은 35%에 불과하며, 절반 이상은 장기 실직 상태이거나 단기·비정규직에 머무른다. 이는 단순한 능력 부족보다는 전략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고, 특히 네트워크 활용 여부가 성패를 가른다.
많은 이들이 퇴직 직후 취업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리고 채용공고에 기계적으로 지원하지만, 이 경로만으로는 성공 확률이 낮다. 실제로 재취업에 성공한 중장년의 45%는 지인 추천이나 인맥을 통해 기회를 얻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결국 취업 시장의 숨은 문은 공식 공고가 아니라 ‘사람의 연결’에 달려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인맥 관리가 곧 청탁이나 부탁의 반복이어서는 곤란하다.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첫 단계는 관계의 목록화다. 재직 중부터 자신의 연락처와 네트워크를 범주별로 정리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직장 동료, 거래처, 협력업체, 교육기관, 봉사활동 등에서 맺은 인연을 관계 강도별로 구분하면 곧 ‘관계 자산’이 된다.
두 번째 단계는 메시지 관리다. 첫 연락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간단히 전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재취업 준비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리고, 대화는 짧게 끝내 상대의 시간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어지는 두 번째, 세 번째 연락에서는 자신이 어떤 프로그램을 수강 중이거나 어떤 역량을 보강하고 있는지를 전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이는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며, 적절한 기회가 있을 때 떠올리게 만든다.
세 번째 단계는 접촉의 리듬이다. 첫 연락 후 3주 이내에 다시 연결하는 것이 적절하다. 시간이 길어지면 기억이 희미해지고, 너무 짧으면 부담이 된다. 이후에는 친밀한 그룹은 자주, 느슨한 그룹은 간헐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마치 투자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듯, 네트워크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재배치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태도다. 독촉처럼 들리는 부탁이나 지나치게 저자세인 태도는 관계를 약화시킨다. 추천이나 소개는 상대방에게도 책임이 따르는 일이므로, 간결하게 현황을 전하고 “혹시 기회가 생기면 알려달라” 정도의 표현이 적절하다. 또한 반응이 미지근하다고 곧바로 거절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이럴 때는 문자나 이메일로 소식을 전하는 것이 오히려 부담을 줄이고, 나 역시 과도한 실망을 덜 수 있다. 결국 네트워크 관리란 강요가 아니라 ‘존재감을 남기는 기술’이다.
국내외 경험을 보더라도, 네트워크는 중장년 재취업의 실질적 통로로 작동한다. 일본은 ‘실버인턴십 제도’를 통해 퇴직자를 지역 기업에 단기 배치하고, 미국은 AARP(전미은퇴자협회)가 시니어 전용 네트워킹 행사를 정례화하며, 독일·프랑스 등 유럽은 ‘세컨드 커리어 페어’를 통해 전문가와 기업을 직접 연결한다(OECD, 2023). 이러한 제도화된 장치는 개인이 느끼는 심리적 부담을 덜고 채용 문턱을 낮추며, 실제로 일본에서는 매년 수십만 명이 참여하고, 미국에서도 수만 명이 재취업 기회를 탐색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우리 사회 역시 네트워크의 제도화를 적극 고민해야 한다. 단순한 채용 알선이 아니라, 직능별·지역별 네트워크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고, 공공기관이나 지자체가 중장년 대상 프로그램을 지원해야 한다. 공무원연금공단의 사회기여활동 프로그램은 퇴직 공무원이 전문성을 유지하면서 사회에 환원하는 동시에 재취업 준비의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으며, 실제로 사업 수와 참여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다만 민간기업과의 매칭은 부족하고, 참여자의 전문분야가 행정직에 편중되어 있으며, 단기 봉사 위주라는 한계가 있다. 향후에는 산업별 매칭 확대, 장기 프로젝트형 모델, 창업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파급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것은 준비의 시점이다. 퇴직 후에 네트워크를 복구하려 한다면 이미 늦다. 재직 시절부터 관계를 넓히고 직장 밖 활동에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인맥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씨앗을 뿌려야 열매를 거두듯, 관계 역시 시간과 정성이 쌓여야 기회의 다리가 된다.
퇴직은 경력의 종착지가 아니라 또 다른 시작점이다. 그리고 그 시작의 성패는 전략적 네트워크 관리에 달려 있다. 이력서의 문장보다 강력한 무기는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퇴직을 앞둔 지금, 점검해야 할 것은 통장의 잔고와 건강검진표만이 아니다. 휴대폰의 주소록과 메신저 목록, 그리고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한 그 이름들이야말로 인생 3막을 여는 열쇠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인생 3 모작 전문가】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LH인재개발원 미래설계지원센터장, 국토교통인재개발원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기사제보 charly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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