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위기의 지역문화재단, 현실을 마주할 시간


“조직은 사람을 병들게도 하고 살릴 수도 있다.” 고대 로마 철학자 키케로의 말은 오늘의 지역문화재단 현실에 적실하다. 최근 인천을 비롯한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우려를 넘어 구조적 위기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대표이사가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사퇴하거나, 직장 내 괴롭힘과 공황장애를 호소하는 직원이 늘어나고, 이사회가 파행을 겪으며 언론과 갈등하는 모습은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이는 공공성과 자율성을 잃은 조직이 내는 경고음이다.


지역문화재단은 지자체가 직접 수행하기 어려운 문화정책을 전문적이고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설립되었지만, 실제 운영은 지자체장과 지방의회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법적으로 자율성이 보장된 듯 보이지만 이사장의 겸직, 예산 승인권, 인사 개입으로 독립성은 형식에 그친다. 현재 전국 기초와 광역 단위에서 백여 개가 넘는 재단이 활동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행정의 하청기관처럼 인식된다.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 한국지역문화지원협의회 등 다양한 연합체가 존재하나 정책 제안과 네트워크, 연구와 연수 업무가 중첩되면서 정체성이 불명확해지고 실질적 컨트롤타워로 기능하지 못한다.


정치와 행정, 그리고 예술인의 압박도 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기관장은 정치적 낙하산 논란에 휘말리고, 지방의회 의원들은 예산을 무기로 특정 단체 지원을 요구한다. 일부 예술인은 지원금 결과에 불만을 품고 항의와 폭언, 로비로 대응하기도 하며, 일부 언론은 충분한 사실 확인 없이 단편적 보도를 내보낸다. 결국 문화재단은 기획보다 방어에, 창의적 지원보다 행정 서류에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대사처럼 “빛을 비추지 않으면 어둠은 계속된다”는 말은 언론의 감시가 왜곡으로 변질될 때 오히려 공공기관 신뢰가 추락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문제는 외부 압력만이 아니다. 내부의 병리적 문화 역시 깊다. 일부 직원들은 예산만 집행하면 된다는 안일함에 젖고, 협업보다는 눈치와 줄 세우기가 우선한다. 공공성 교육과 시민성 훈련은 뒷전으로 밀리며, 보고서와 정산에 매몰된 행정 과잉은 현장을 지치게 한다. 한 직원이 “재단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자괴감을 느낀다”라고 토로한 것은 결코 개인의 푸념이 아니다. 이는 조직 전체의 사명감이 붕괴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제도적 개혁과 인식의 전환이다. 기관장 인선과 이사회 구성은 정치적 이해에서 벗어나야 하며, 공모제와 추천제를 확대하여 전문성을 기준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지방의회나 공무원의 부당 개입을 차단할 법적 장치도 필요하다. 연합회와 협의회는 각각의 기능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는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는 창구로,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는 광역 차원의 정책·재정 조율 창구로, 한국지역문화지원협의회는 전문가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연구와 인력 양성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기구가 있으면서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무력한 구조가 반복된다.


예술인과의 관계 역시 제도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공정한 심의 시스템을 강화하고 갈등을 중재하는 상설협의체를 두어야 하며, 왜곡 보도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공식 커뮤니케이션 체계도 필요하다. 내부적으로는 공공성·시민성 교육을 정례화해 사명감을 회복하고, 현장 중심 역량을 강화해 행정 과잉을 줄여야 한다.


중국 고전 『대학』에는 “나라를 다스림은 집을 가지런히 함에 있다(治國在齊家)”는 구절이 있다. 조직 경영도 이와 다르지 않다. 문화재단은 관료제의 하위기관이 아니라 시민과 예술인을 위한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한다. “문화도시는 이제 시민의 일”이라는 선언은 구호가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정책 성과는 단순 참여 인원이 아니라 얼마나 깊이 공감했는가로 평가되어야 한다.


문화재단의 진짜 미래는 행정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다. 기억과 관계, 생활의 리듬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문화재단이 되찾아야 할 진정한 공공성이다. 위기의 이름으로 불리던 재단이 회복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는 길은 멀지 않다. 그것은 법 몇 줄의 개정, 시스템 몇 칸의 정비, 그리고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최소한의 상식에서 시작될 수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지역문화재단, 자율과 책임의 리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