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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웬수일까, 내 편일까”

- 퇴직 전 대화법이 갈등을 줄인다

“같이 점심 먹을까?” “오늘도? 아침에도 같이 먹었잖아.”


짧은 대화가 곧장 싸움의 불씨로 번졌다. 직장에 다닐 때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따로 보내다 보니 식사 한 끼가 소중했는데, 퇴직 후 하루 세끼를 함께하다 보니 오히려 갈등이 늘어난 것이다. 필자 역시 공직 생활을 마치고 10개월간 집에 머무르며 아내와 두 끼 이상을 함께하면서 작은 말씨름이 커지곤 했다. ‘보고 싶을 때만 보던 사이’에서 ‘하루 종일 함께 있는 사이’가 되자, 말투·생활 리듬·사소한 습관들이 부딪히기 시작했다.


부부 갈등의 원인은 다양하다. 통계청 ‘이혼사유 조사’에 따르면 성격 차이가 40% 이상으로 가장 많았고, 경제적 문제(18%), 소통 부족(15%)이 뒤를 이었다. 즉,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생활 방식과 대화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퇴직 후 남편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 아내는 생활 리듬이 깨지고, 남편은 ‘가장의 자리’를 내려놓은 상실감에 예민해진다. 이렇게 무심히 지나쳤던 차이가 퇴직 후 일상에서 증폭된다.


실제로 통계청 조사(2024)에 따르면 황혼이혼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연령대는 60대 초반이다. 이혼 사유도 “성격 차이와 대화 부족”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은퇴 후 생활 리듬 불일치·경제적 갈등·자녀 독립 이후의 공허감이 겹쳐 작용한다. 50대 후반부터 60대 부부는 하루 대부분을 함께 보내며, 예전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생활 속 균열’이 크게 확대되는 시기를 맞이한다.


많은 부부 갈등은 사실 ‘새로운 일상에 대한 준비 부족’에서 비롯된다. 직장 시절에는 가정이 회사의 보조 무대처럼 작동했지만, 퇴직 이후에는 집이 곧 삶의 주 무대가 된다. 문제는, 그 무대 위에서 각자가 주연을 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남편은 집에서 권위를 유지하려 하고, 아내는 오랜 생활의 중심을 침범당했다고 느끼며 갈등이 생긴다.


이를 줄이려면 퇴직 전부터 ‘역할 재조정’ 훈련이 필요하다. 첫째, 일상의 작은 합의를 생활화해야 한다. “오늘 점심은 함께 먹을까, 따로 먹을까” 같은 대화도 합의 습관을 만든다. 둘째, ‘개인 시간 존중’을 명확히 해야 한다. 각자가 취미·봉사·학습 등 자기만의 활동을 유지할 때 하루 세끼의 무게는 훨씬 가벼워진다. 셋째, 경제 문제를 미리 설계해야 한다. 퇴직 소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목표와 지출 원칙을 공유하지 못하면 사소한 씀씀이가 곧 갈등의 불씨가 된다.


역사 속에도 지혜가 있다. 『논어』에는 “부부유별(夫婦有別)”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단순히 위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역할과 공간을 존중해야 조화가 유지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또한 도연명의 귀거래사에는 “歸去來兮(귀거래혜), 본성으로 돌아감만 못한 것이 없다”는 문장이 있다. 퇴직 후의 부부 생활도 억지로 새로운 무언가를 덧붙이기보다 서로의 본래 성정을 인정하고 돌아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준다.


반대로 큰 갈등 없이 살아온 부부도 있다. 필자가 만난 한 70대 부부는 “대화는 길게, 잔소리는 짧게”를 생활 원칙으로 삼았다. 남편은 아침마다 집안일을 맡아 아내의 부담을 줄였고, 아내는 남편의 친구 모임을 적극 지지했다. 각자가 ‘나의 영역’과 ‘우리의 영역’을 구분하며 살아가니 갈등이 줄고 웃음이 늘었다고 한다. 결국 행복한 노년 부부의 비결은 특별한 철학보다 ‘작은 배려의 습관화’였다.


퇴직 후 부부는 단순한 생활 동반자가 아니라 다시 ‘배우자’가 된다. 하루 세끼를 함께하며 생활의 무대를 공유할 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균형을 찾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황혼 갈등은 숙명이 아니다. 준비된 대화, 존중의 습관, 작은 배려가 쌓일 때 오히려 ‘두 번째 신혼’이 가능하다. 퇴직 후, 부부는 다시 배우자가 된다 – 황혼 갈등을 넘어 동행의 지혜로. 그리고 이 동행은 단순한 생존의 연장이 아니라 인생의 마지막 장을 가장 따뜻하게 채워가는 공동 창작의 여정이 된다.


출처 : 경인종합일보

http://www.jonghap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64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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