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작권의 새로운 지평
늦은 밤, 윤서의 작업실은 컴퓨터 모니터 불빛만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끝없이 반복되는 지우고 다시 쓰기의 악순환, 멈춰버린 창작의 시간. 노트에는 시작조차 못 한 소설 제목만 덩그러니 적혀 있었고, 커피잔에는 식어버린 커피가 남아 있었다.
책상 한쪽에 놓인 작은 카드 한 장이 시선을 끌었다. “AI 기반 창작 도구 체험권”이라고 적힌 문구가 눈에 띄었다. 처음엔 코웃음을 쳤다. 기계가 소설을 쓴다니. 그러나 창작의 벽 앞에서, 호기심이 의심을 이겼다.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AI 창을 열었다. 화면 속에 나타난 메시지. “무엇을 써볼까요?”
윤서는 오랫동안 메모해두었던 이야기 한 줄을 입력했다. AI는 곧바로 그 한 줄을 확장하며 새로운 문장과 상상을 제시했다. 정지해 있던 윤서의 머릿속에 무채색의 스케치가 색을 입기 시작했다.
며칠 후, 윤서의 노트북에는 완성된 단편 소설이 저장돼 있었다. AI의 제안과 그녀의 감정이 맞닿아 만들어낸 결과물. 그러나 뿌듯함도 잠시, 불안감이 스쳤다. “이건 내 창작일까? 아니면 기계의 산물일까?”
윤서는 저작권과 AI의 창작 문제를 검색했다. 생성형 AI가 만든 결과물의 저작권은 누구의 것인가? AI의 제안도 표절일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깨달았다. 창작은 단순히 글을 적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삶과 감정을 세상에 내놓는 용기라는 것을.
그날 이후, 윤서는 AI를 도구로 받아들이되, 선택과 감정은 자신이 결정하기로 했다. AI가 제시하는 문장 중에서도 자신이 느낀 울림을 골라 의미를 부여하고 다듬었다. 그렇게 AI와의 협업 속에서 윤서는 자신의 감성과 주체성을 지켜냈다.
AI와 함께한 작품을 세상에 공개하자, 독자들은 놀라움과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질문도 쏟아졌다. “AI가 쓴 거라면서요?”, “진짜 창작인가요?” 그녀는 담담히 말했다.
“AI는 제 상상을 넓혀주는 도구일 뿐, 이야기는 제 삶과 감정의 일부입니다. 저작권은 그 마음과 존재를 지켜주는 약속입니다.”
윤서는 동료 작가들과 AI 협업 창작 모임을 시작했다.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AI 도구의 사용법을 공유하며, 창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밤새 토론했다. 젊은 디자이너, 음악가, 작가들이 모여 프로젝트를 공유하고 아이디어를 나눴다. 윤서는 그 자리에서 말했다.
“AI는 우리의 상상을 넓히는 친구예요. 하지만 최종 선택과 감정은 우리에게 달려 있어요.”
그날, 한 젊은 작가는 AI와 협업해 만든 일러스트를 공개했다. 누구보다 감각적인 색채와 디자인. 그러나 그는 말했다. “이 그림의 배경은 AI가 제안했지만, 주인공의 표정과 색감은 제가 정했어요. 그 표정은 제 기분을 담은 거니까요.”
윤서는 그 말을 들으며, 창작은 도구의 문제를 넘어 존재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AI는 빠르고 편리했지만, 인간만이 담을 수 있는 감정과 감각이 있었다.
얼마 후, 그녀는 두 번째 작품을 완성했다.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 옆에 ‘AI 협업’이라는 표기를 넣었다. 일부는 비난했고, 일부는 응원했다. 그러나 작품을 읽은 한 독자가 남긴 글이 그녀를 울렸다.
“AI와 협업이라도 결국 이야기는 사람의 것입니다. 선택하고, 고민하고, 감정을 담는 건 작가 본인이니까요.”
그 말에 윤서는 마음이 뭉클해졌다. 자신이 가는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겨울이 다가오던 어느 날, 윤서는 창작자 포럼에 초대받았다. 주제는 ‘AI와 저작권의 미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AI가 창작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인간 창작자의 자존감과 감정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발언 기회가 돌아왔을 때, 그녀는 말했다.
“AI는 제게 글을 대신 써주지 않아요. AI는 제 상상을 넓히고 제가 놓친 부분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친구입니다. 하지만 최종 선택과 결정은 제가 합니다. 저작권은 그 선택과 감정을 지켜주는 울타리예요.”
장내는 조용해졌고, 이내 한 사람이 박수를 쳤다. 이어 곳곳에서 박수가 울렸다. 그녀는 그 순간 알았다. 자신의 진심이 누군가에게 닿았음을.
포럼을 마친 윤서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창작의 길에 AI가 함께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창작은 단순히 글과 그림의 결과물이 아니라, 선택과 감정의 여정이었음을 다시 확인한 날이었다.
그녀는 다시 작업실로 돌아왔다. 노트북을 켜고 AI 어시스턴트를 불렀다. 화면 속 AI가 물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윤서는 웃으며 말했다. “이번엔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써보자.”
그녀는 AI가 제안한 단어 중 마음에 와 닿는 것만을 골라 자신의 문장으로 다듬어갔다. 마치 오래된 친구와 대화하듯, 윤서는 AI와의 작업 속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더했다. 완벽해 보이는 문장은 과감히 지우고, 서툴지만 진심이 담긴 표현으로 바꿔 썼다.
이윽고 장편 소설이 완성되었다. 표지에는 그녀의 이름 옆에 ‘AI와의 협력으로 완성’이라는 문구가 적혔다. 발표회장에서 작품을 선보였을 때, 사람들은 감탄하며 물었다. “AI가 썼다면서요? 그럼 진짜 창작이 맞나요?” 윤서는 차분히 대답했다.
“AI는 제 손을 빌려 이야기를 키워줬을 뿐, 이야기의 주인은 저입니다. 저작권은 그 선택과 감정을 지켜주는 약속이라고 믿어요.”
그녀의 말에 청중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한 소년이 다가와 속삭였다. “저도 AI랑 그림을 그려요. 그런데 친구들이 ‘그건 네가 한 게 아니잖아’라고 해요.” 윤서는 소년의 손을 잡고 따뜻하게 말했다. “그림은 네 손끝에서 완성된 거야. AI는 너를 도와주는 친구일 뿐, 진짜 이야기는 너 안에 있어.”
봄이 다가왔다. 작업실 창문을 열자 따스한 바람이 불어왔다. 윤서는 다시 노트북을 켰다. AI가 속삭였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써볼까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번에는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노트북 화면에 문장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창작은 늘 선택과 감정의 여정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여정에는 AI라는 친구가 함께하고 있었다. 저작권은 그 길을 지켜주는 울타리이자, 창작자가 세상에 자신을 소개하는 이름표였다.
윤서는 오늘도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혼자가 아니라, 세상의 수많은 마음들과 함께. 기계와 감성이 어우러지는 그 길을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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