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노동, 드러나는 존엄
2025년 6월, 대통령이 청소노동자 앞에 무릎을 굽힌 장면은 단지 하나의 포즈가 아니라, 한 사회가 보이지 않는 노동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매일 새벽 도심을 깨우는 미화원, 점심시간 직후 사무실을 정돈하는 환경미화 노동자, 무더위 속에서 안전을 지키는 경비원까지 이들은 말없이 우리 곁에 존재한다. 시민의 눈에는 스쳐 지나가는 풍경일 수 있으나, 이들의 손끝에서 공적 공간은 유지되고 일상은 지속된다. 이들의 노동은 국가 기능을 지탱하는 힘이지만, 그 존재는 쉽게 잊힌다.
문제는 이들이 사회적으로 가려진 존재로 남는다는 점이다. 드러나는 노동은 보상받고, 가려진 노동은 희생으로 당연시된다. 보건의료, 돌봄, 환경미화, 배달·택배 같은 직군은 소득과 안정성 모두에서 열위에 있으며, 사회적 안전망의 경계 바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통계청 「2024년 사회서비스 노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돌봄 종사자 중 73.1%가 자신의 노동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낀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는 단지 처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존엄 인식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재명 대통령이 청소노동자 앞에서 무릎을 굽히며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은 선언이었다. 그는 가장 먼저 만난 노동자를 통해 어떤 권력이 되고자 하는가를 말하고자 했다. 그러나 정치의 진정성은 선언이 아닌 구조의 재편으로 입증돼야 한다. 프랑스 파리시청의 청소노동자 파업이 시민의 지지를 얻은 이유는 그 노동이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도시의 숨결이라는 사회적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핀란드와 독일은 청소노동자의 최저임금을 다른 공공노동자와 동일하게 보장했고, 뉴욕시는 매년 Frontline Worker Appreciation Month를 지정해 시민과 정부가 함께 이들을 기념한다.
한국은 아직 필수노동자에게 제도적 최소 보장조차 부족하다. 고용불안, 하청 구조, 비정규직 고착화는 이들의 노동을 소모품처럼 다루게 만든다. 이 구조가 방치된다면 결국 시민 삶의 품질 자체가 붕괴된다. 감정노동이 무너지면 서비스는 분노와 위축으로 채워지고, 돌봄노동이 존중받지 않으면 사회적 돌봄의 붕괴가 시작된다.
해결을 위해선 세 가지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첫째, 청소·경비·돌봄 등 생활 밀착형 필수노동자를 위한 고용 안정 특별법을 제정해 불안정한 용역·하청 관행을 공공직영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법이 시행되면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던 근로자들이 근무 안정성과 직업적 존엄을 보장받을 수 있으며, 공공서비스의 질도 향상된다. 고용이 지속되면 노동자는 기술을 축적하고 자긍심을 갖게 되어 이직률 감소와 전문성 향상도 기대된다.
둘째, 사회서비스 통합평가 지표를 도입해 노동의 양과 질을 정량적으로 측정하고, 일정 기준 이상일 경우 예산·인사·근무 조건의 우대를 법제화해야 한다. 이 제도는 감정노동 등 보이지 않는 노동의 가치를 가시화하고, 투명한 성과 평가를 통해 민관 조직의 동기부여도 높일 수 있다.
셋째, 시민 인식 개선을 위해 공교육 및 공공미디어에서 존엄 노동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제작·보급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 교육이 아닌, 노동의 다양성과 필수성에 대한 사회적 성찰을 유도하는 일이다. 특히 미래세대가 노동의 위계를 내면화하지 않도록 돕고, 존중과 자긍심의 문화 형성으로 상호 존중 사회 전환을 앞당길 수 있다.
필자 또한 민간 연수원 총괄 책임자로 근무하던 시절, 미화원과 경비 근로자에게 점심 식사를 정기적으로 제공하고, 직원회의에 정식 초대해 의견을 듣는 문화를 만들고자 했다. 작은 배려가 쌓이니 직원 간 수평적 존중이 생겼고, 이는 시설 전체의 서비스 질을 바꾸는 촉매가 되었다. 서로를 동료로 바라보는 조직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공동체의 첫걸음이자, 존엄의 실천이다.
이제는 정책도 그런 실천을 따라야 한다. 무릎을 굽힌 지도자의 시작은 거기서 멈추어선 안 된다. 진정한 변화는 정책과 예산, 교육과 인식 전환이 동반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들이 존엄을 회복할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성숙해질 수 있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칼럼니스트】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개인메일 charlykim@hanmail.net)
출처 : 경기중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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