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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준 Mar 14. 2022

사람의 일생을 표현할 수 있는 완벽한 단어는 없다.

<시민 케인> - 오손 웰즈

 <시민케인>은 ‘기자가 언론계의 황제이자 정계 유력 인사였던 케인의 삶을 쫓으며, 그의 유언이었던 로즈버드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이야기다. 41년 제작된 이 영화는 현재까지도 영화사를 꿰뚫는 명작으로 남아있다. 그만큼 영화를 다루는 책이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교과서 같은 영화이자, 많이 분석된 영화다. 그런 이유로 <시민케인>에 내 의견을 얹는게 조심스럽긴 하지만, 최대한 나의 시선으로 영화를 해체해보려고 한다.     

 이 영화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세련됐다’. 41년 작에도 불구, 스토리 전개는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고 편집은 현재 극장가에 나오는 영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영화의 프롤로그 부분에는 –촉발 사건이 일어나기 전 배경 설명- 케인의 일생을 나레이션과 함께 10분정도로 간략하게 추략하는데, 영화 <프랜치 디스패치>가 떠오른다. 두 영화의 프롤로그 모두 신문사 편집장이었던 인물의 삶을 간략하게 추략한다. 똑같이 나래이션이 빠른 속도로 그의 인생을 설명하고 화면은 빠른 편집으로 관객의 눈을 바쁘게한다. 믿어지는가. 제작년도만 해도 80년이 차이나는 두 영화가 서로 겹쳐보인다는 것이. 심지어, <프렌치 디스패치>는 현존 영화감독 중 가장 세련된 영화를 만들고 있는 ‘웨스 엔더슨’의 영화이다. 프롤로그 부분만 하더라도 이 영화의 세련됨을 판단하고도 남지만, 본 내용에서의 편집은 더욱 눈에 띈다. 이 영화에서 편집이 가장 드러난 부분은 트렌지션이다. 어떻게 하면 컷과 컷을 단조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을까 고심한 흔적이 드러났다. 디졸브, L컷, J컷, 와이프, 매치컷, 스매시컷 등 당시 영화 편집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트렌지션이 쓰였다. 실제로 이런 노력은 영화의 빠른 전개와 호응해 스타일리쉬함을 만들어냈고, 관객의 흥미를 이끌고 나가는 데에 한 몫을 해냈다. 영화 음악도 많은 몫을 해냈다. 과거 케인의 삶이 나올때는 유쾌하고 빠른 템포의 노래가 나와 기득권 세력을 풍자하는 역할을 해낸다. 후반부 아내와의 갈등 부분은 사랑한다는 케인의 말과 반대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노래가사가 나와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이는 곧 관객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해냈다.     

 내러티브를 살펴보자면, 영화의 프롤로그 초반 10분은 전체 2시간짜리 영화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프롤로그에 간략하게 소개한 케인의 삶은 관객에게 케인에 대한 편견을 만들어낸다.  ‘부유하게 살아와, 정계에 도전했지만 문란한 스캔들로 정치 인생이 끝난 전형적인 기득권 세력’. 이게 관객이 케인에게 가진 인상이다. 그리고 케인의 유언인 ‘로즈버드’의 의미를 찾기 위해 기자가 케인의 행적을 살펴보는 본 내용에서 이 편견이 깨져나간다. 케인. 이 캐릭터는 관객이 예상한 전형적인 기득권 세력이 아니었다. 케인은 기본적으로 선을 표방한다.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려고 노력하고 돈을 쫓는 기득권 세력에 대적한다. 신념을 가지고 자신만의 길을 걷는다. 자신이 한 말은 지켜서 대사 자체가 복선이 되기도 한다. 물론 선을 표방한다 뿐이지 완전히 도덕적인 삶을 살지는 않는다. 나이가 들며 바람을 피우고, 아내를 억압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싶어한다. 이런 못난 모습은 오히려 관객이 케인에게 정이 가게 한다. 그 못난 부분이 개연성을 가지고 있어, 관객 자신의 모습과 겹쳐보며 인물에게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을 추구하던 인물이 세상에 환멸을 느껴 망가져간다니, 조금 못날 수 있는 거 아닌가! 프롤로그는 결국 관객에게 씨뿌리기로 작용한 것이다. 그리고 본 내용이 씨 거두기. 여기서 관객이 느낄 흥미는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미쟝센과 촬영술도 많이 신경 쓴 티가 났다. 미쟝센에서는 유독 상징적인 요소가 눈에 띄었다. 케인이 아내와의 갈등을 가지는 시퀀스에서 둘은 관객이 눈치채지 못할만큼 천천히 멀어진다. 오버 더 숄더로 같은 화면에 담겼던 둘은 갈등이 심화될수록 각각 원샷으로 화면에 잡힌다. 단절감이 심화된다. 관객은 무의식적으로 둘 사이의 거리가 많이 멀어졌다고 느낀다. 그리고 결국 아주 긴 식탁의 양쪽 끝에 앉은 둘을 롱쇼트로 잡으며 그 거리를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미쟝센은 전경, 중경, 후경으로 나누어 구분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중경에 인물을 배치하고 후경은 아웃포커스로 날리는 경우가 흔하다. 이 경우 관객의 시선은 수동적으로 한 곳에 고정된다. 오손웰즈 감독은 시민케인에서 딥 포커스 기법을 사용하여 후경까지 살리면서 관객의 시선을 능동적으로 만들었다. 시민케인의 어릴적 어머니가 후견인과 상의하는 시퀀스의 경우에는 창문 밖에 있는 어린 케인이 뛰어노는 모습까지 화면에 잡힌다. 

전경에 아내와 후견인, 중경에 아버지, 후경에 케인이 뛰노는 모습

 조명이 기능하는 영역도 굉장히 컸다. 케인의 권위적인 모습이 나올때마다 조명은 키라이트 하나가 측면으로 비추며 케인의 얼굴에 많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케인의 얼굴은 섬뜩하게 비춰진다. 어떤 경우 케인의 그림자만으로 그 위압감을 나타낸다. 바닥에 앉아있는 케인의 부인에게 케인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 만으로 부인이 어떤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다.     

 영화의 메시지는 관객에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전하고자 하는 바를 설교하지 않았다. 앞서 설명했듯 프롤로그에서 가졌던 편견을 관객 스스로 깨며 그 메시지가 가슴에 와닿는 방식이다. 관객의 마음에 깊게 남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 메시지는 무엇인가. ‘사람을 한 단어로 단정지을 수 없다’가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바이다. 케인의 인생을 10분정도로 추략한 프롤로그를 보고 관객이 가졌던 생각은 케인의 인생을 본격적으로 나타낸 본 내용에서 완전히 바뀐다. 이는 영화에서 케인의 행적을 따라간 기자 또한 마찬가지다. 기자는 케인의 유언인 ‘로즈버드’의 의미를 찾으러 그의 인생을 깊이 탐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로즈버드’의 의미는 찾을 수 없었지만 ‘사람의 인생은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어간다. ‘로즈버드’는 일종의 맥거핀이었다. 기자가 추구하고 관객이 추구한 로즈버드의 의미를 알아낸다는 목표는 영화의 메시지 전달을 위한 수단이다. 영화적으로도 실제로도 의미가 없다. 유언이 한 마디든 두 마디든 뭐가 중요하겠는가. 인간의 삶은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메시지는 확장된다. 과연 영화로, 2시간짜리 영화로 한 사람의 70평생을 담아낼 수 있는가. 케인의 삶을 본 우리 또한 케인의 한 쪽면만 보고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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