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것
✍️ 인공지능이 발달한 미래에는 ‘나만의 생각’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인간으로서 가장 절망적인 순간일 것 같다.
✍️ 지성인은 사유하고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이를 사람들과 나눠야 한다.
*저는 순헌융합인문학 연계전공을 이수하여 융합인문학사로 졸업했는데, 편의상 부제목에 철학이라고 대체해서 표기한 점 먼저 알립니다. 연계전공은 다양한 학과의 전공을 합쳐서 수강하는 복수전공 프로그램입니다. 저는 이미 본전공이 경제학이라, 철학과 인문학 수업을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교환학생 첫 달에 캐나다 친구가 내게 물었다. “진, 너는 어떻게 생각해? 우리 신경 쓰지 말고, 네 의견 말이야.”
1) 대학교 2학년, 교환학생을 가기 전 마지막 학기에 심화전공을 할지 복수전공을 할지 미리 정해야 했다. 1학년 때 글쓰거나 발표하는 교양 수업을 많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공부를 별로 하지 않았는데도 모두 A+가 나와 성적장학금도 받았다. 반면, 경제 공부를 할 때는 그래프가 잘 그려지지 않고 수식이 잘못됐을 때 정답이 아닌 부분을 찾는 과정이 꽤 버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국 열심히 안 해서 그랬던 것 같다.
레포트를 쓸 때는 밤을 새도 행복했다. 활자를 읽고 내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과정이, 수식을 이해하고 답을 찾는 전공보다 더 재밌었다. 그래서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고 착각하여 철학 수업을 몇 개 신청했다. 그러나 확실히 전공과 개론은 천지 차이였다. 지루하고 이해 안 되는 책도 많았고, 고통스러워도 더 내 걸로 만들 수 있게 노력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대형 강의의 주입식 수업과 달리, 소수정예로 계속 토론을 반복하는 시간도 적응하기 어려웠다.
2) 어렸을 때, 모두가 나를 성실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범생으로 여겼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공부를 잘하고 똑똑한 학생이어야 했다. 그래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즉 성적을 위한 공부를 치열하게 했다. 어떻게 하면 정답을 더 빨리 맞출지 요령을 익혔고, 암기 과목은 모두 벼락치기로 잘 본 뒤 잊어버렸다. 독서도 많이 했지만, 사실 필독서이거나 내신과 수능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읽었다.
대학생 때 교수님께 ‘아픈 손가락’이라는 메일을 받았을 땐, 솔직히 이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고, 아직도 임시보관함에 쓰다 만 답장이 있다.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내 민낯을 들킨 거구나 깨달았다. 많이 읽기만 하고, 지식을 넘치게 가지고 있는 것은 진정한 공부가 아니다. 사유하고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이를 사람들과 나눠야 한다. 학문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그동안 왜 내 삶과 분리하여 생각했을까.
3) 아직도 지성인이 되려면 갈 길이 멀지만, 그때부터 부단히 애썼던 것 같다. 프랑스에서도 수업 중간중간 교수님께 자유롭게 손 들고 말하는 애들 사이에서, 눈치 보지 않고 내 목소리를 내보기도 했다. 뉴스 기사 한 문단, 책 속 한 줄을 읽거나, 영화 한 장면을 보거나, 음악 한 곡을 들어도 평론이나 해석을 보지 않고 “일단 나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먼저 물었다. 4학년 때, 달라진 모습으로 모든 철학과 인문학 전공을 무사히 마치고 졸업했다.
4) 사실 사회생활에 지치고 먹고 사는 데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아지면, 내 주관을 가진다는 게 정말 피곤하고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비판적인 사고 없이 정보의 홍수에 떠내려가고, 점점 수동적인 사람으로 변하기도 한다. 최근에 인공지능 관련 이슈들을 보며, 앞으로는 ‘나만의 생각’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인간으로서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 아닐까 싶었다. 현재와 미래에는 사람들과 건강하게 토의하며 계속 발전할 수 있는 내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