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다.
”연애“
연애라는 단어를 찾아보니
남녀(男女) 사이에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함.
보통 결혼 전 연애를 하고 결혼 후는 부부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결혼 18년 차 우린 한국을 넘어 미국이라는 대륙에 13년 전에 정착을 했다.
13년이라는 세월이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
이 시간 동안 우리는 신분을 해결해야 했고 5년 전 영주권을 받았다. 참 재미있는 것은 그 종이 딱지가 막상 받으면 별거 아닌데 받기 전 까지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합법적 신분이 중요하다. 드라이브 라이센스를 연장하거나 공공기관 방문 또는 집을 렌트할 때도 상당히 중요하다. 하지만 없으면 귀찮고 성가시게 하는 일이 종종 있고 무엇보다 “합법적인 신분” 이 단어에서 자유로워진다.
감사하게 남편 덕분에 영주권을 취득하고 그 이후 코로나로 몇 년이 순식간 사라졌다.
어쩌면 코로나 시기가 남편에게 좋은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쉴세 없이 달려온 남편이 실업급여와 추가 수당을 받으며 편하게 쉬었고 그때 나는 은행에 취직이 되어 보험 커버가 되었으니 남편입장에서는 부담 없는 휴식?? 이 되었다.
나는 은행이 아닌 전혀 다른 업무를 했고
HR Consulting 관련된 일을 하다 2024년 5월 31일 퇴사를 했고 퇴사 후 바로 스페인 여행과 한국을 다녀왔다. 네트워킹을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내가 가야 할 길이 확실해졌으며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나를 힘들게 했던 질문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왜 사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해 나 스스로를 많이 힘들게 했는데 명확하게 그 답을 찾았다.
어떤 결정을 할 때 특히 나 자신에 삶에 있어서 나는 결단이 좀 빠른 편이다. 큰일에 대범하다.
미국으로 이민 온 것도 내가 결정해서 남편한테 드리 밀었고 지금처럼 사업을 시작하고 타주로 이주해야 하는 것도 나의 결정이었다.
여기서 “나”라는 말은 중심이 내가 아니라 시작을 누가 하냐를 의미한다.
우리 부부는 20년 전 그때처럼 연애를 시작하기로 했다.
사회 초년생 때 남편 도움으로 일적인 면에서 상당한 인정을 받았다. 온전한 내 힘이 아니고 남편덕에 인정받아서 마음 한편에 일에 대한 열등의식이 있었다.
그래서 Long Distance Love (롱디) 이 문장이 나에게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만들거라 생각한다.
나는 지금을 부부라고 말하기보단 다시 남편과 연애하는 시간으로 생각하고 온전히 전하지 못했던 사랑을 전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