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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쌤 Dec 14. 2021

나쁜 아이가 되기를 응원해!

사회 프로젝트수업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한 학기 한 번 사회과를 중심으로 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에는 개인의 능력만큼이나 협력과 시너지 그리고 타인을 향한 공감과 경청능력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한 감수성을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일정부분 함양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번 학기 긴 프로젝트의 종착역은 모둠별로 박람회를 준비하여 초대할 예정인 4학년 아이들에게 학습한 것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설명한다는 것이 부담이 되기도, 수업의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금요일로 예정된 발표일을 앞두고 모둠원들이 분주한 가운데 승기가 수업이 끝나가는 때 다가왔다. 

“선생님, 사회프로젝트 발표 금요일날 할 수 있나요?”

“그럼, 승기모둠도 준비 하고있지?”

승기의 눈빛이 흔들린다. 국민모범생인 승기는 학급에서 ‘성실하고 착한 친구’로 알려져있고 전교에서 거친 싸움과 욕설로 이름을 날리는 현수마저도 언젠가 이야기 끝에 ‘전교에 욕 안할 것 같은 애 있어요...승기..“하고 말한 적이 있다. 친구들에게 성실하고 호감을 주는 인상이며 책임감 또한 강해서 좀처럼 적이 없는 승기다. 그런데 눈에 걱정이 가득하다.


”그런데, 저희 모둠은 준비가 잘 안되는 것 같아요. 모둠원들이 활동을 안해요...“


슬픈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다. 조편성을 할 때, 관심 분야를 중심으로 할 것인가? 남녀비율을 맞추어 무작위로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이 많았는데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니 관심 분야를 중심으로 진행하고 싶다 해서 그렇게 수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진행하다 보니 승기네 모둠과 한 모둠이 남자아이들로만 모둠이 편성되었다. 승기네 모둠은 승기가 워낙 성실해서 잘 하겠거니 싶었고, 다른 남자아이들로 이루어진 모둠을 걱정했는데 그 모둠이 의외로 좌충우돌 잘 해나가고 있는 모습이 보여 안심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승기의 모둠이 의외로 협동이 잘 되지 않는가보다. 아뿔싸! 내가 승기에게 거는 기대만큼 아이들도 같은 마음이었구나...모둠별로 의견을 모아야 할 일이 있을 때나 작업을 해야할 때, 모둠원들이 장난을 치거나 농담으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서로간에 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승기야, 그동안 모둠활동 하면서 많이 힘들었구나. 내일 모둠원들과 함께 더 나은 모둠활동을 위한 대화모임을 할까?“

”그건 싫어요.“


엥? 보통 이렇게 물어보면 ”네“하고 이야기하는데 승기에게는 대화모임이 부담인 듯 느껴진다. 그 순간 청소 시간이 끝나고 잡힌 회의시간이 다가왔다. 승기에게 회의에 참석해야할 시간이라고 이야기하니 기다리겠다고 한다. 보통 방과후에 학원스케줄이나 다른 이유로 아이들은 잘 남지 않는데 30분여의 회의를 마치고 오니 여전히 승기가 기다리고 있다. 고민의 크기가 생각보다 큰 것 같다.


승기는 대화모임이 ’나쁜 아이들이 모여 훈계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로 인해 대화모임을 여는 것을 ’선생님께 고자질 하는 것‘으로 여겼다. 고자질을 하면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대화모임이 나 때문에 열린 것을 알게된 친구들이 쉬는 시간에 승기의 자리로 놀러오지 않을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혼자가 되면 너무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대화모임을 하고싶지만 할수없다고 했다. 말하는 승기의 눈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구나...

”승기야, 힘들 때 털어놓을 사람이 있어?“라는 질문에 오래 고민하는 승기...

”친구 중에 나와 비슷한 친구가 있어서 종종 답답하면 털어놓았어요.“

”그런 친구가 있다니 다행이네. 그 친구가 몇반이야?“

”.........“

”언제 친했던 친구일까?“

”3학년때?“


결과적으로 힘들어도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없다는 말이었다. 승기는 주로 부모님께 털어놓는다고 했다. 생활기록장에 정성스럽게 글을 남겨주시는 부모님은 승기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신다고 했다. 상담주간에 상담을 할 때, 부모님께서 평소 승기의 의견과 입장을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령 학원에 등록하는 것도 6학년이 된 지금까지 권유하지 않으시다가(학부모로서 참았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승기가 학원에 가야겠다고 말한 순간(6학년 2학기가 된 지금)에 보내주셨다고 한다. 그럼에도 승기의 말을 듣는 내내 염려되는 것이 있었다.  


부모님께 털어놓을 수 없는 그 또래 남학생 특유의 고민이 있지 않을까? 사춘기 남학생의 사회생활 비중이 모두 또래 관계에만 집중되어있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지만 반대의 경우도 그렇다. 아이들이 나쁘다고 표현하는 그 감정들은 실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과 대화할 때 나쁜 감정을 표현하는 아이가 몇이나 될까? 특히 승기처럼 마음이 여리고 착한 아이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승기는 한 번도 ’나쁜 아이‘가 된 적이 없었다. 나쁜 아이가 되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겁내고 있었다.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매번 들어주고 모둠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내색하지 못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대부분 잘 들어주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참았을 것이다. 그래서 승기는 모둠활동을 힘들어했다. 내적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니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승기 스스로 착한아이의 ’선‘을 그어놓고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다.

”승기야, 친구들에게 거절하고 반대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힘들지?“

”네....“

”불편함을 표현하는것도?“

”네“

”그런데, 승기야 선생님은 요즘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불편함 때문에 대화모임을 요청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느라 요즘 바빠. 어제도, 오늘도...“

승기의 눈이 커진다.

”진짜요? 저는 몰랐어요.“

”불편함을 이야기하고 서로 대화를 통해 조정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야. 승기가 걱정하는 것처럼 친구 사이가 멀어지는 것을 본적이 아직 없어.“ 


승기는 이 말에 마음을 돌렸다. 나는 승기에게 거절해도 행동이 조금 잘못되어도 너 자체로 멋지고 좋은 아이니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승기가 착한아이의 선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 조금쯤 나쁜아이가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기가 나쁘게 마음먹는다고 얼마나 과격하게 표현할 것인가? 지금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다른 의견을 표하는 정도일 것이다. 다음 날 점심시간 마련된 대화모임은 잘 진행되었고 대화모임을 끝낸 승기는 생각보다 모임이 괜찮았으며 마음이 후련하다고 말했다. 

밟으면 죽을 것 같았던 선을 밟았을 때 생각보다 괜찮은 느낌...그 느낌이 승기에게 의미 있었기를 바란다.

어쩌면 어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아이들은 승기와 같은 아이들이 아닐까? 

아무 말 없이 묵묵하고 성실한 아이들....착하다는 말에 메어있는 아이들 말이다. 양보하고 싶지 않거나 불편한 마음이 자연스러운 아이들에게 ’착한아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나의 마음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무비판적으로 상대에게 양보하고 나의 불편한 마음을 착한 척 감추게 된다. 사람의 마음에는 착하지 않은 마음도 있는데 그 마음에 ’죄책감‘이라는 꼬리표를 스스로 달아버린 승기와 같은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착하지 않은 마음도 어딘가에서는 안전하게 표현되어야 한다. 착한 친구, 착한 아들, 착한 학생 어디에도 나의 진짜 마음을 표현할 안전한 곳이 없다면 점점 힘들어지다가 나중에 폭발할지도 모를 일이다. 굉장한 소음과 불꽃을 작렬하며 폭발 중인 아이들은 너무 잘 보인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승기처럼 조용한 폭탄을 안고 있는 아이들에게 시선이 잘 가지 않는 곳이 교실이다. 

우리 교실이 안전한 공간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승기가 조금쯤 나쁜 아이가 되기를 마음으로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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