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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쌤 Dec 31. 2021

ㅌㅈ이 이야기

ㅌㅈ이는 밝고 악의가 없는 아이다. 1학기에 줌으로 ㅌㅈ이를 처음 만났을 때, 전형적인 사춘기 아이의 표정인가 했을 정도로 얼굴에 왠지 모를 그늘과 퉁명함이 있었다. 등교개학을 하고 함께 지내면서 ㅌㅈ이의 오래된 불편함과 직면했고 자신을 보호하려 퉁명한 표정으로 과격한 욕설을 내뱉던 ㅌㅈ이의 모습은 학급의 분위기가 안정되어감에따라 다소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얼굴이 밝아지고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누가 나를 못살게 굴지 않나?’하는 안테나를 더 세우지 않게 되었다. 성장과 퇴보를 거듭하는 아이들의 특성상 가끔 욱하는 자신의 감정을 친구들에게 쏟아내듯 욕설을 하는 모습을 보이곤 하지만 ㅌㅈ의 특유의 솔직함과 받아들임으로 갈등조차 자신을 성장시키는 디딤돌로 삼고 있는 모습이 지켜보는 어른으로서 대견하고 배울만 하다.

ㅌㅈ이의 가장 큰 장점은 그러한 솔직함과 놀라운 꾸준함에 있다. 학급에서 생활하며 매일 쓰는 생활기록장에 매일같이 정성을 기울이는 아이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쓰는 활동 자체를 싫어하는 남학생은 더욱 그렇다. 매일 단답형의 글을 쓰는 아이부터 무슨 글씨인지 한참을 들여다봐야 판독(?)이 가능한 글까지 다채롭다. 하지만 ㅌㅈ이의 생활기록장은 나름의 정성을 들여 한글자씩 꾹꾹 눌러쓴 흔적이 역력하다. 모두 같은 공책으로 시작하는 생활기록장이 ㅌㅈ이것만 너덜너덜한 것을 보면 생활기록장 속에 담긴 ㅌㅈ이의 생활들은 ‘진짜’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2학기 들면서부터는 자기조절력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인생계획을 세우고 그 해의 목표를 정한다. 그 해의 목표를 다시 월별로 나누고 매일 아침 월별 목표를 확인하고 해야할 것을 한가지 생각하고 실천한다.

ㅌㅈ이의 꿈은 ‘프로게이머’다. 보통 프로게이머가 되고싶다 말하면 부모님도, 교사도 걱정을 한다. 게임의 세계에 빠져서 허우적대며 재미만을 추구하는 모습이 저절로 연상되기 때문이다. ㅌㅈ이가 게임을 좋아하는 것을 알았지만 꿈의 전면에 ‘프로게이머’가 등장하고 매달 목표에 게임의 티어 올리기와 같은 어른이 보기에 다소 가치없어 보이는 목표들이 보일 때 이러한 목표도 지켜봐주어야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고민 끝에 나는 지켜보기로 했다. 저렇게 한글자씩 정성들여 쓴 아이라면 지켜봐주는 것이 맞다....혹시 바른 길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경로를 변경할 수 있는 나이니 가고싶은 길은 가보는 것이 맞다...꿈이 없는 아이도 있는데 명확한 꿈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또래 많은 아이들이 게임을 좋아하지만 프로게이머로 장래를 설정하는 아이는 그리 많지 않다.


10월의 ㅌㅈ이는 게임의 이해도를 높이려 스스로를 피드백하고 공책에 적기도 하면서 실력을 쌓으려 노력했다. 5점 만점에 4점을 줄 정도로 열심히였다. 11월의 ㅌㅈ이는 주로 연합해서 게임을 하는 익명의 게이머들에게 좋은 말을 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의 실력만으로 팀플레이를 주로하는 게임의 영역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급식을 먹으며 앞자리에 앉게 된 ㅌㅈ이에게 게임의 세계에 대해 조금 엿들을 수 있었다.


 이전에는 플레이 하다가 실수를 하면 채팅창에 욕으로 도배를 하고 서로 욕을
주고받다가  상대가 나가버리면 그대로 게임이 종료되고 점수를 잃기도 했는데 
좋은 말을 해주면 나가버리지도 않고 분위기가 좋아져서인지
게임 랭킹도 많이 올랐어요.


내가 잔소리할 필요도 없이 게임을 통해 협력하려 노력하고 협력의 순기능을 알아가고 있는 것이 놀랍다.


그렇지만 채팅창에 좋은 말을 쓰면서도 실제로는 욕하면서 칭찬을 쓰는 경우가 많아요. 안보이니까요...^^:


나의 칭찬에 쑥쓰러운 듯 ㅌㅈ이가 말한다. 그래도 칭찬의 순기능을 알아가고 칭찬을 해주는 과정에서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스스로를 이끌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11월의 ㅌㅈ이는 나를 빵터지게 했다. 합법적으로(?)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 노력한지 3개월째,


게임을 많이 한다고 재미있는 것은 아니구나


하고 느꼈다고 한다. 그동안 애썼구나..찐으로 노력한 ㅌㅈ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치열하게 노력해 재미있기만 한 게임의 다른 면을 경험한 ㅌㅈ이가 달라보였다.


이제 더 이상 프로게이머가 꿈인 ㅌㅈ이가 걱정되지 않는다. ㅌㅈ이는 자신만의 경험을 통해 어떻게 ‘노력’해야하는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ㅌㅈ이의 꿈이 다른 무언가로 바뀔 날이 올지도,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노력의 ‘’을 경험한 ㅌㅈ이는 이루어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러한 신뢰감이 있다.

‘게임’에 가려진 ㅌㅈ이의 꾸준함을 늦게 알아봐주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ㅌㅈ아, 너는 마음 먹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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