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의 반전 매력
연구소가 다른 직장과 다르다고, 공부하는 연구원들만 모여 있어 별 탈 없이 늘 조용할 거라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완벽한 착각이었다는 걸 금세 깨닫게 되었다. 월급쟁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그 조용했던 연구소에서 온갖 인간 군상을 목격했다.
소장은 돈 안 되는 이상한 연구소를 차려놓고 매달 거액의 돈을 쓰고 있었고, 입만 열면 이상한 줄임말을 쓰는가 하면, 학문을 한답시고 뜬구름 잡는 얘기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본인은 한 시가 급하다며 연구원들을 닦달했지만, 연구원들이 심혈을 기울여 낸 성과물은 쓰레기통에 집어던지곤 했다. 소장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연구소는 사람이 들고나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참 다양한 인간들이 거쳐갔는데, 겉으로 보기엔 공부만 할 것 같은 '샌님'이 어마 무시한 욕망을 품기도 했다. 이 보잘것없는 연구소를 자기 휘하에 사로잡아 어떻게 해 보겠다고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소장은 현실감 없는 부자 혹은 공부밖에 모르는 부자 혹은 뭘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순진한 부자로 비쳤기 때문이다.
소장은 온갖 일에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고 자영업에서 회사를 일군 사람이라는데, 우리는 연구소에서만 그를 봐서 그런지 그냥 엉뚱한 소장으로만 보였다. 이 점을 악용하려 하는 인간들이 더러 있었다. 비열하고 추잡한 방법으로 본인의 영달을 꾀하려 했는데, 방법도 다양했다. 연구소의 운영비를 빼돌리는 예는 흔했다. 소장은 필요하다는 돈을 잘 내주는 것 같았고, 연구원들은 돈 문제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은 귀여운 수준이었다.
조금 더 크게 일을 벌이는 인간은 연구소 정도는 자기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다고 믿는 부류였다. 아무런 성과도 없이 월급만 축내는 연구원을 모조리 내보내라고 소장을 부추겼다. 본인에게 거액을 주면 단기간에 소장이 원하는 걸 체계적으로 이루어 주겠다면서. 이런 인간들은 실제로 여럿이었고, 연구소가 여러 번의 풍파를 겪은 원인이기도 했다.
심지어 어리숙해 보이는 소장의 돈을 갈취하지 않는 것은 왠지 손해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 부류도 있었던 것 같다. A라는 연구원은 뜬금없이 소장실에 찾아가 오늘 당장 집에 넘어가게 생겼다며 앉은자리에서 몇 천만 원의 현금을 받아 챙긴 사람도 있었다. 그는 서류뭉치를 잔뜩 들고 소장실을 찾았다는데, 어리숙한 노인네를 정신없게 만들려는 술수였을 것이다. 모두 거짓이었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이상한 '똥파리'들이 소장 주변을 맴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소장이 그들 머리 꼭대기에 있다는 것을. 그들은 소장을 속였다고 생각했지만, 소장은 역으로 그런 인간의 특징을 이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A라는 연구원은 그 후로도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다가 연구소를 나가게 되었는데, 연구원들 사이에 있던 소장이 하는 혼잣말을 똑똑이 들었다.
- 내가 애초에 돈을 받을 생각이면 그런 녀석에게 돈을 줄 리가 있나. A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
소오름.
이런 걸 반전이라고 해야 하나?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 이라고 한 찰리 채플린의 말은 진짜 명언이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