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권위는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의심은 누구의 잘못인가

by 올리브나무


지식의 통섭, 자연과 인문의 보편의 원리를 찾는 일반성의 학문.

내가 이해한 소장의 뜻은 딱 그 정도였다. 소장의 뜻은 참으로 타당하고, 의지를 내어 연구소를 운영하는 것이 존경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가끔은 헷갈렸다. 소장은 기존의 학문의 한계를 지적하며 자신이 새로운 학문을 펴겠다고 하면서도, 기존 학자들과 너무나 비슷한 말을 하곤 했기 때문이다.


소장은 생명체의 출현과 발전은 생명의 원인자에 의도가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정체성의 근간이 되는 유전자에는 생명의 설계도가 프로그래밍 되어있는데, 이것은 명백히 의도된 것이며, 따라서 주체이자 원인자가 있다고 했다. 이런 포인트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비판했다.

그런데 내용을 듣다 보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너무나 내용이 비슷했다.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신체는 유전자가 연출한 기계에 불과하며, 생명체는 유전자에 프로그램된 대로 먹고사는 행위를 지속하고, 결국 유전자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소장의 주장과 <이기적 유전자>는 표현까지 겹쳤다.


하지만 소장은 그 책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책이 뭔지도 모른다면서. 물론 <이기적 유전자>가 지금처럼 유명한 때는 아니었다. 나도 연구소에 들어가서 알게 된 책이었다. 연구소 서가에는 당연히 그 책이 있었다. 원장이 구비한 것인지, 연구원들이 일찌감치 리스트 업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연구원들의 술자리에서는 소장이 리처드 도킨스의 책에서 힌트를 얻었을 거라는 의견과 소장의 통찰이 마침 리처드 도킨스와 비슷했을 거라는 의견이 갈렸다. 뭐, 세상에 리처드 도킨스만 그런 생각을 하란 법은 없으니까. 진실은 알 수 없었다.

소장의 주장은 리처드 도킨스 말고도 동물행동학이나 사회생물학의 대가들이 말하는 내용과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소장은 정말로 그들의 책을 본 적이 없을까. 나는 늘 의구심이 들었다. 소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정말 천재일 터였다. 하지만 나는 소장이 천재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최근에 최재천 교수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사회생물학자로서 평생 개미를 연구하던 그가 끝내 연구하지 못한 흥미로운 주제가 있었다고 했다. 개미의 군집생활과 맛집이 모여있어야 더 잘 되는 사회경제학적 현상을 관련지어 연구하는 것이었단다. 미국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는데, 한국의 교수로 오게 되는 바람에 이 연구는 끝내 하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대박!

소장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늘 얘기하던 주제 중의 하나였다. 자연계와 사회문화적인 현상의 보편성은 그가 입고 달고 사는 주제였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례 중 대표적인 것이 개미였다. 너무 많이 들어서 식상했던 그 얘기를 최재천 교수가 끝내 연구하지 못한 주제로 아쉬움을 느낀다니.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소장이 너무 자주 얘기해서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말의 권위는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나의 왜 그를 의심했을까. 그의 잘못일까, 나의 잘못일까.

이제야 비로소 인정하게 된다.

그는 천재,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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