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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에서 다시 도전

by 홍머루

버몬트에서의 1년은 유난히 힘들었다. 호스트 가족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아, 마음 편한 날이 드물었고, 쌓이는 스트레스로 인해 학업 성적도 미국에 처음 교환학생으로 왔을 때보다 오히려 떨어졌다. 학기가 끝날 무렵, 떨어진 성적에 대해 걱정이 많으셨던 부모님은 이번엔 강하게 한국으로 돌아와 학교를 다니기를 권하셨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 기회를 달라고 고집을 부렸다. 이미 미국에서 2년간 학교를 다닌 터라 한국으로 돌아가서 진도를 따라잡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지금의 성적 부진은 주변 환경의 영향이 크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을 가까스로 설득한 끝에 유학원을 통해 다시 전학 절차를 밟았다. 이전에 버몬트의 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작은 학교와 시골의 조용한 분위기가 학업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선택이 실패로 돌아간 만큼, 이번에는 지나치게 외진 곳에 위치해있지 않고 적당한 규모의 사립학교들을 후보로 삼았고, 최종적으로 미국 동북부 보스턴 근교에 위치한 학교로 진학을 결정했다.


버몬트를 떠나던 날, 벌링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최대한 빨리 호스트 가족과 헤어지기 위해 서둘러 탑승 수속을 마치고 보안 검색대로 향했다. 불과 1년 전, 버지니아에서는 호스트 가족과 눈물 섞인 작별을 했지만, 버몬트에선 호스트 가족과 작별의 포옹조차 나누지 않았다. 보안 검색을 마치고 탑승장에 들어서자 비로소 이 끔찍한 곳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이 밀려왔다. 약 20시간의 여정 끝에 나는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그 어느 때보다 보고 싶었던 부모님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미국의 수능인 SAT를 준비하며 바쁘게 여름방학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다시 미국으로 떠날 날이 다가왔고, 이번엔 보스턴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새 학교에서 새 학기를 맞이하는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비장했다. 이전 학교에서의 아쉬운 성적을 만회하고 싶었고, 1년 뒤 다가올 대학 입시를 위해 TOEFL과 SAT 준비도 철저히 하고 싶었다.


보스턴 로건 공항에 도착하니, 인상이 좋아 보이는 아줌마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공항에서 차로 약 40분쯤을 달려 도착한 호스트 가족은 아줌마와 그녀의 남동생 단둘이 사는 아담한 가정이었다. 두 분 다 유머 있고 친절하셨고, 덕분에 이 집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약 2년간 큰 문제없이 즐겁게 생활할 수 있었다.


새로 다니게 될 학교 역시 버몬트의 학교에 비해 시설면에서 훨씬 훌륭했고 커리큘럼도 체계적이었다. 무엇보다 카운슬러 선생님은 나의 의견을 존중해 주셨고, 반대하는 부분이 있다면 충분한 설명을 통해 나를 납득시켰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새로운 출발에 대한 기대감 속에서 나는 일주일 뒤 새 학교에서의 첫날을 준비했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 여유가 있던 나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대한민국이 좁은 아이들>, <7막 7장>, <쌍둥이 형제, 하버드를 쏘다>, <공부 9단 오기 10단>과 같은 유학 관련 서적을 읽으며 앞으로의 계획을 전략적으로 세우기 시작했다.


미국 대학은 일반적으로 학생의 SAT/ACT 시험 성적, 내신 성적, 교과 외 활동, 그리고 에세이를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합격 여부를 결정한다. 물론 시험 성적이 높을수록 좋은 대학에 합격할 가능성이 커지지만,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과 같은 최상위권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우수한 시험 성적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대학에 진학하려면 Advanced Placement (AP)나 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와 같은 어려운 난이도의 과목들을 수강하거나, 다양한 교과 외 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자신의 잠재력과 역량을 효과적으로 어필하는 것이 중요한 입시 전략으로 여겨진다.


우선 카운슬러 선생님과 상담을 통해, 내가 수강할 수 있는 모든 AP 수업들을 과감히 신청했다. AP 수업은 고등학교에서 대학 학점을 미리 이수할 수 있는 제도로, 수업의 난이도는 높고 진도도 빠르다. 학기가 시작되고 AP 수업들을 실제로 경험해 보니, 지금까지 들었던 어떤 수업보다 과제와 시험의 양이 많았다. 특히 내가 수강한 AP 생물학과 AP 미국사는 방대한 암기량을 요구해, 수업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매일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해야만 했다.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축구부와 연극부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운동장이나 강당으로 향했다. 때때로 다른 학교와의 축구 경기가 있거나 연극부 연습이 늦게까지 이어질 때는 저녁 8~9시가 되어서야 학교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숙제를 하거나 다음 날 수업을 예습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남는 시간에는 틈틈이 TOEFL이나 SAT시험 준비에도 힘썼다. 매일 늦은 시간까지 학교 수업 준비와 시험공부를 병행하다 보니 항상 잠이 부족하고 몸은 피곤했지만, 버몬트에서 지낼 때와 달리 마음 편히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이 오히려 감사하게 느껴졌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 이어지다 보니 어느덧 학기 말이 다가왔다. 최선을 다해 공부한 결과, 작년보다 훨씬 좋은 성적으로 11학년을 마무리할 수 있었고, 틈틈이 준비한 TOEFL 시험에서도 미국의 많은 대학들이 요구하는 점수인 100점 이상을 받았다. 열심히 학교 생활에 임한 덕분인지 학기말 시상식에서는 상도 두어 개 받았고, 연극부에서는 다양한 작품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다 보니 다음 학기 임원으로 선출되는 기쁨도 누릴 수 있었다.


학기 초에 세운 목표들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고, 이 노력이 값진 성과로 돌아온 것 같아 뿌듯했지만, 최종적으로 대학에 합격하기 전까진 안주할 수 없었다. 카운슬러 선생님과 상담한 뒤, 새로운 학기에는 AP 수업을 4개까지 수강하기로 했다. 축구부와 연극부 활동은 계속 이어가기로 했고, 학생회 활동과 정기 봉사활동까지 더해져 더욱 바쁜 12학년 생활이 예고되었다. 더군다나 내 앞엔 SAT라는 거대한 산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올 한 해 열심히 공부하며 알찬 시간을 보낸 덕분에, SAT 또한 잘 치를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3줄 요약:

1. 힘들었던 버몬트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보스턴 근교의 학교로 전학을 감.

2. 전략적으로 대학 입학을 위한 목표를 세우고 AP 수업, 교과 외 활동, 시험 준비를 병행하며 바쁘게 11학년 생활을 하였음.

3. 노력 끝에 성과를 얻었고, 대학 합격이라는 최종 목표를 위해 더욱 고된 12학년 생활을 맞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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