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쁘게 시간을 보내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늘어지게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이상 아침 일찍 일어날 이유도, 강제할 그 무엇도 없었기에 지금까지 맞춰져 있던 핸드폰 시계 알람도 해제한 후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실컷 자려고 했다.
하지만 평생 몸으로 익혀온 신체 리듬을 한 순간에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아침 6시 반이 조금 지나자 눈이 뜨졌다.
마치 누군가가 귀에대고 일어나라고 큰소리 친듯 벌떡 일어났다.
더 이상 출근하지 않아도 되니 더자도 된다고 나자신에게 세뇌시키듯 말해 보지만 한번 돌아온 정신은 다시 자리에 누울 틈을 주지 않았다.
결국 대충 옷을 입고 동네 공원을 한바퀴 돌고 난 후
아내와 내가 마실 커피를 사들고 집으로 왔다.
이날부터 한동안 동네 산책과 모닝커피 한잔을 사오는 것이 나의 일과가 되었다.
회사를 그만두면 바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의 달력에는 앞으로 반년 이상 동안 약속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술 약속, 운동약속도 많아 회사 다닐 때 보다 더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그렇게 6개월 이상의 시간이 자나자 달력 스케쥴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도 바쁜 일정을 제쳐두고 나를 잊지 않고 찾아준 선 후배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말만 앞서던 사람들과 말없이 지켜보다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확연히 구분되는 시기였던 것 같다.
말로만 최선을 다하고 잊지 않겠다고 했던 사람들이 아무런 연락이 없다고 해서 기분 나쁘거나 괘씸하게 생각되지는 않았다.
회사 생활하는 내내 인생 선배들에게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고, 임원이 된 후 나 스스로 이런 상황에 대비하는 마음가짐을 다져온 노력이 어느정도 효과를 발휘한 것 같다.
반면, 생각지도 못한 선후배들의 연락을 받으면서 현직에 있을 때 잘해주지 못한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내가 미처 선배들에게 잘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나의 감정을 어지럽혔다.
보이지 않으면 멀어질 수밖에 없는 당연한 세상이치를 좋은 쪽으로 거스르는 선후배들이 있었기에 현직을 떠난 나의 6개월은 가슴 벅찬 시간이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