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 시간이었다.
한 곳에서 30여년 이상을 일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수많은 사건들이 밀려왔다 쓸려나가기를 반복했지만, 그럴 때마다 때론 가족을 생각하고, 때론 더 이상 물러 설 곳이 없다는 절박감으로 버텨온 시간이었다.
다행히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이라 한결 수월한 점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33년을 보낸 회사를 떠나오던 날(퇴직한 것은 아님),
왠지, 평생 짊어져 왔던 무겁고 답답한 뭔가를 내려 놓은 느낌이었다.
송별의 시간을 그룹 직원, 임원들과 각각 가졌을 때도 기분이 좋았다.
내일이면 집밖을 나와도 갈 곳이 없는 처지가 되었지만 그냥 기분이 좋았다.
긴 회사생활을 무탈하게 한 나자신에게 고마워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룹 직원 중 한 남자 직원이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할 때도,
또한, 여성 임원이 눈물을 흘리며 송별의 아쉬움을 말 할 때도 그냥 덤덤한 기분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냥 홀가분 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임원회의를 마치고 로비에 가득 도열한 직원들 사이로 걸어 나올 때도
너무 기분 좋게, 씩씩한 걸음으로 후다닥 지나치니 누군가가 천천히 가라고 말했다.
로비끝에 이르자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이 송별 꽃다발을 팔에 안겼고
그렇게 마지막 사진을 남기고 차에 올라다.
밖에는 CEO와 임원들이 서서 손을 흔들었고
내가 탄 차는 그렇게 서서히 33여년 동안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회사를 떠났다.
아직 훤한 대낮이라 집에는 아내만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내가 그동안 고생했다며 나를 토닥여 주었다.
그때까지 별다른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저녁이 되자 딸 내외와 아들이 일찍 집으로 왔다.
오늘 내가 회사를 그만두는 날이라고 회사 일을 마치자 바로 달려왔다고 했다.
아내가 차린 푸짐한 저녁을 먹은 후 아이들이 준비한 축하 파티를 했다.
벽 한쪽에 크다란 플래카드를 붙였고 또다른 벽면엔 나의 사진으로 만든 플래카드를 세워 두었다.
케잌의 촛불을 끄자 아이들이 꽃다발과 봉투를 내민다.
앞으로 벌이가 줄텐데 기죽지 말고 쓰라고 준 꽤 많은 돈이 들어 있는 돈봉투였다.
나는 그 돈 봉투를 서재 책 사이에 고이 모셔두었다.
그렇게 회사생활 33년의 마무리를 가족과 행복하게 하였다.
(벽에 걸린 플래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