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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인의 Feb 28. 2024

전공의를 위해 매년 20조 원을 쓰는 미국

한국이 의대정원 2000명 증원 정책과 이에 따른 의료계의 반발로 시끄럽습니다. 정부는 미래에 의사가 부족할 것이기 때문에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하고, 의료계는 이와 같은 급격한 증가는 의학교육의 질의 저하를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를 표하고 있죠. 그냥 강의실 늘리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의학교육은 강의실과 임상실습, 임상수련을 아울러 대략 15년이 걸리는 엄청난 시간과 자원이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정원을 늘리기 위해서는 많은 계획이 필요합니다.


제가 경험한 한국의 의학교육은 이미 아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의대에서의 시험은 의학 자체를 잘 이해하는지 평가하는 시험문제보다 매년 똑같이 나오는 문제를 정리한 "족보"를 누가 더 잘 외우는지 평가하는 성격이 짙었고, 4-8명의 동기들과 같이 도는 임상실습에서는 교수님과 전공의가 너무 바빠서 개개인의 능력과 노력과 무관하게 모두 똑같은 점수를 받는 등, 누가 좋은 의사가 될지 분별성 있게 평가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의대 정원이 60% 증원이 된다면, 이미 한계치에 있는 의학교육 시스템이 망가질까봐 우려됩니다.


게다가 제가 한국의 의대생으로서 바라본 한국의 전공의는 워낙 일에 치여 피교육자보다는 노동자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전공의로서 더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 미국행을 결심한 것도 적잖아 있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수련을 받으며 이곳은 확실히 전공의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고 많이 투자하고 있다고 느꼈는데, 이에 대해 적어보려고 합니다.




전 세계에서 미국처럼 의료가 민영화된 나라는 찾기 어렵습니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건강보험도 부실하고, 의료비도 워낙에 비싸기 때문에 병원을 잘못 갔다가 파산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미국에서조차 전공의 교육에는 정부가 돈을 엄청나게 쏟아붓는데요, 전공의 수련을 위해 미국 전역에 있는 수련병원에게 매년 총 20조 원을 지원합니다 [1].  반면 한국은 최근까지 전공의 교육에 대한 정부의 금전적 지원이 전혀 없다가, 최근에 기피과를 대상으로 지원을 시작해 2022년에는 총 13억 원을 지원했다고 합니다 [2]. 미국과 비교하면 무려 만배가 넘는 차이죠.


전공의 교육의 가치: 미국의 20조 vs. 한국의 13억


병원 입장에서 전공의를 교육하는 것은 상당히 골치 아픈 일입니다. 아무리 의대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실습에서 어깨너머로 배웠어도, 막상 수련병원이라는 실전에 투입되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다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통상적인 직장의 신규 사원은 크고 작은 실수를 통해 배우고 경험을 쌓지만, 병원이란 직장에선 실수가 일어나면 그 피해가 환자에게 고스란히 가기 때문에 실수가 아닌 사고가 됩니다. 그래서 사고방지를 위해 윗년차 전공의나 교수가 옆에 붙어서 일일이 지도를 해주어야 합니다. 수술 같은 고난도 의료는 물론이고, 약 처방 하나 하는 것도 몇 밀리그램을 먹어야 하는지, 하루에 몇 번을 먹어야 하는지, 몸에 어느 구멍으로 들어가는지 (입, 코, 귀, 정맥, 항문 모두 가능합니다), 어떤 환자에서는 금지인지 일일이 따져야 하기 때문에 실수가 일어날 여지가 너무 많기 때문이죠(환자가 약을 하나만 먹고 있으면 다행이지만 다수에 약을 동시에 복용하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이렇게 교수나 윗년차 전공의가 1대 1로 지도와 교육을 하다 보니 일의 효율성이 무척 떨어집니다.


특히나 전공의는 매달 근무하는 과가 변경되기 때문에 근무가 조금 익숙해질 때면 새로운 환경에서 초보로 다시 시작해야 됩니다. 제가 지난 2년 동안 소아과에서 근무한 과를 다 세보니 13개를 돌았네요(일반 병동, 일반 외래, 신생아집중치료실, 소아중환자실, 소아응급실, 소아신경, 소아호흡기, 소아심장, 소아내분비, 소아 알레르기, 소아재활, 행동발달, 아동학대). 마지막 연차인 3년 차가 되어서도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소아혈액종양, 소아감염, 소아소화기 같은 분과를 돌게 되면 또 헤매는 저의 모습이 뻔히 보이는 만큼, 전공의 과정 내내 교육이 필요하고 전문의보다 업무효율성이 떨어집니다.


이처럼 전공의의 업무 능력이나 의학적 지식은 엉성한데 법적으로 의사로서 전공의에게 주어진 역할(진찰, 진단, 처방, 술기)은 어렵다 보니 걸핏하면 실수가 일어날 수 있고, 이에 대한 소송 리스크도 있습니다. 미국은 워낙 툭하면 소송을 하는 나라이다 보니, 미국에서 의사를 하면 평균적으로 한 번은 의료소송에 휘말린다고 하죠. 미국의 모든 수련병원은 전공의에게 배상책임 보험을 제공하여야 되는 규칙이 있는데, 수련병원은 아무래도 전공의가 없는 병원보다 부담해야 하는 보험부담금이 더 클 것입니다.  


이런 새내기 의사를 위해 미국 수련병원은 제도적으로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려고 하고, 이도 결국 비용입니다. 환자 진료를 하다 보면 공부할 시간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각 수련병원은 정해진 시간 동안 전공의를 근무에서 열외 시키고 교육을 제공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수련병원 자격을 박탈당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환자를 보는 회진 도중에도 전공의나 의대 실습생이 많은 질문을 할 것을 유도하고, 이에 대해 지도교수는 일일이 설명을 해주다 보니 시간이 부족해 전공의 한명이 환자 10명 이상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 수련병원은 한국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전공의를 뽑습니다. 제가 예전에 있던 신시내티 어린이병원은 매년 59명의 소아과 전공의를 뽑았는데, 이 숫자는 대한민국 전국에서 뽑는 소아과 전공의의 무려 3분의 1에 달하는 숫자입니다. 최근 한국의 소아과 전공의 충원률이 20%대인것을 감안하면, 현재 신시내티 어린이병원의 소아과 전공의 수가 대한민국 전체 소아과 전공의 수 보다 많습니다.


대한민국 전국보다 미국 한 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수가 더 많다



이렇게 전공의 교육에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다 보니, 아마 미국의 많은 병원들은 정부가 따로 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굳이 전공의를 수련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수련병원에게 평균적으로 전공의 한 명 당 연간 1억 5천만원을 지급합니다 [3]. 미국 전공의 연봉이 약 9천만 원에서 1억 원 사이인데, 이를 훨씬 뛰어넘는 금전적 지원을 하면서 병원에게 전공의 수련을 장려하는 것이죠. 이 지원금을 노려 비정상적으로 전공의를 많이 받는 병원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반면 한국에선 전공의들의 평균 연봉이 약 5천만 원이고, 이마저도 대부분을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수련병원이 직접 지원합니다 [4]. 따라서 한국 수련병원들은 전공의를 극한에 노동강도로 몰아야만 적자를 면할 수 있다 보니 전공의들이 온전히 교육을 위한 시간을 보장받기 어렵죠.




이렇게 한국보다 교육 상황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최근에 많은 미국의 전공의들이 코로나19를 계기로 수련환경에 대한 불만이 임계점을 넘어 전국적으로 전공의 노조에 가입하는 추세입니다. 제가 있는 병원은 근무시간은 길고 고된데 월급으로 로스엔젤레스 월세 내기도 힘들다며 파업을 선언했다가 병원과 타협을 맺어 급여 인상과 주거비용 지원을 얻어낸 바 있습니다.


한국의 전공의들은 비교적 더 열악한 수련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전문의가 되는 꿈을 위해 하루하루 위태한 상태로 고통을 참고 있었을 텐데, 그 치열한 의료 현장과 완전히 동떨어진 정부의 2000명 의대 증원 정책을 듣고 억장이 무너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많은 환자가 피해를 받기 전에 정부와 의료계가 대화를 통해 합의에 이르러 파업이 중단되고, 이를 통해 한국의 전공의 수련환경도 개선이 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image credits: Pixabay - QuinceCreative


references:

1. He K, Whang E, Kristo G. Graduate medical education funding mechanisms, challenges, and solutions: A narrative review. The American Journal of Surgery. 2021 Jan 1;221(1):65-71.

2. https://www.medifonews.com/news/article.html?no=181013#:~:text=집행된%20예산%20중%20%27전공,만원이%20각각%20사용됐다.

3.Mullan F, Chen C, Steinmetz E. The geography of graduate medical education: imbalances signal need for new distribution policies. Health Affairs. 2013 Nov 1;32(11):1914-21.

4. http://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0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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