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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지 Oct 23. 2024

아르코 발표 7

불의 말

불의 말

  

누가 불을 보았다 하는가

  

양간지풍 창연하던 날

바람은 불을 불렀네

  

범바위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미웠으리라

찰랑거리는 영랑호 물을 뿜어 올리는 코끼리가 되고 싶었을 거야

보광사 목불은 어처구니가 사라진 걸 알게 되어 참담했을 테지

불당골 고옥들 덮치는 불 터지는 소리로 차리리 청맹과니였음 했을

  

사진리 은모래들 햇빛을 접고 쉬려다

먼 산에서 터지는 불꽃 덩어리에 놀라

파도 사이에 묻은 몸 일으켜 물보라를 만들고 싶었을 터

  

 가지마다 분홍의 꽃망울 오종종 열렸을 장천리의 복숭아나무들

악, 외마디 소리 하나 지르지 못하고 산화되던 찰나

볍씨도 울었네

울고 있었다네

펑펑 울어 그 눈물로 자신을 지키고 싶었지만

불,

큰 불은

볍씨 가득한 창고 뒤편 벚나무의 꽃잎과 살구나무의 꽃잎과

움 틔울 시간 그냥 기다리며 버짐 피는 감나무의 내력을 무시하며

한날한시 화엄의 저편으로

생명 있는 모든 것을 몰고 갔다네

  

소금바다를 거슬러 새끼를 풀러 뭍으로 오르던 황어들 놀라 도망치고

먼바다에서 푸른 비늘 키우던 청어 떼들

숭어 집안 소식에 파랗게 질려 갈 때

툭 툭 번지던 불꽃

불꽃들이 육지로 더 육지로

도시로 더 도시로 타전한 그 밤의 모르스 부호

  

“제발 나를 죽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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