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골 곰탕이 된 프랜차이즈, 기존 팬과 신규 팬 모두 떠나는 이유
SF 호러의 역사를 새로 쓴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
칠흑 같은 우주와 폐쇄된 공간,
미지의 존재가 주는 압도적인 공포는 스크린 너머의 관객마저 질식시켰습니다.
H.R. 기거의 손에서 탄생한 제노모프는 단순한 괴수를 넘어,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코즈믹 호러의 상징으로 군림했습니다.
하지만 4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에일리언'은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까요.
수많은 파생작이 쏟아져 나왔지만,
첫 편의 영광을 재현하기는커녕 깊은 맛이 모두 사라진 '사골 곰탕'이라는 냉소 섞인 평가를 받습니다.
특히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야심 차게 기획된 '에일리언 어스'는,
오히려 프랜차이즈가 마주한 문제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설적이게도 관객이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저주받은 지식' 앞에서 '어스'는 새로운 공포를 창조해야 하는 거대한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랜 팬들이 '에일리언'에 진정으로 바랐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많은 이들이 존 카펜터의 걸작 '더 씽'을 이야기합니다.
'더 씽'의 공포는 괴물 자체를 넘어, 고립된 인간 집단 내에서 피어나는 편집증과 불신에서 완성됩니다.
내 옆의 동료가 과연 인간인지 알 수 없는 극한의 심리적 압박감이야말로
'에일리언' 1편이 보여주었던 서스펜스의 본질과 맞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관객의 날카로운 눈은 더 이상 얄팍한 속임수에 머물러 주지 않습니다.
숨은 의도를 가진 안드로이드, 어김없이 탐욕을 부리는 기업,
순서대로 희생되는 선원들의 공식은 이미 닳고 닳았습니다.
결국 '에일리언 어스'는 익숙함과의 결별을 선언하며
'새로운 시도'라는 위험한 도박에 나설 수밖에 없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방향은 팬들의 기대를 철저히 외면한 채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변화라는 명목 아래 '에일리언 어스'가 선택한 '어린아이와 제노모프의 교감'과 같은 설정은,
프랜차이즈의 숨통을 끊어 놓는 치명적인 한 수였습니다.
이 시도는 두 가지 측면에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첫째, 장르의 기둥을 통째로 뽑아버렸습니다.
처절한 생존 스릴러에 뜬금없이 등장한 소년만화풍의 감성은
"이건 아닌데" 하는 '싸함'을 유발하며 작품 고유의 톤을 무너뜨렸습니다.
둘째, 스스로 구축해 온 세계관의 핍진성을 파괴했습니다.
'프로메테우스'가 나름의 SF적 논리로 쌓아 올린 '생물 병기'라는 설정은,
'주파수를 통한 교감'이라는 판타지적 상상력 앞에서 산산조각 났습니다.
통제 불가능한 자연재해와 같았던 제노모프가 길들일 수 있는 맹수로 격하되는 순간,
'에일리언'은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스스로 버린 셈이 되었습니다.
결국 이 모든 문제점을 안고 세상에 나올 '에일리언 어스'의 미래는 명확해 보입니다.
기존 팬과 신규 팬, 그 누구의 마음도 사로잡지 못하는 실패의 길입니다.
기존 팬들은 희망과 의심 속에서 시청을 시작하겠지만,
변질된 정체성에 실망과 냉소를 느끼며 6화의 문턱을 넘지 않을 것입니다.
신규 팬들은 이름값에 이끌렸지만, 기대했던 명쾌한 공포 대신
쏟아지는 복잡한 설정에 혼란과 피로감을 느끼고 더 직관적인 재미를 찾아 떠나갈 것입니다.
결국 기존 팬은 '배신감' 때문에, 신규 팬은 '지루함' 때문에
작품을 외면하게 되는, 기획 단계부터 예견된 실패입니다.
'에일리언 어스'는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어떻게 새로운 에일리언을 보여줄지가 아니라, 우리가 왜 첫 번째 에일리언에 열광했는지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