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패와 상처가 길이 될 수 있다면
삼성병원 교수님의 말처럼, 베체트병은 내 인생의 '나쁜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친구 말고도 여럿이 더 있었다.
마음의 감기라는데 몇 년간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 우울증, 원치 않는 순간 숨통을 조여 오는 공황장애,
그리고 극한의 인내 끝에 남은 화병까지.
내 안에는 너무나 많은 '나쁜 친구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이 친구들을 미워하고 원망했다.
실패한 인생에 내려진 벌 같았고, 평생 벗어날 수 없는 족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그 친구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가 겪은 실패의 경험을 글로 옮기는 과정은,
나의 가장 깊은 상처를 스스로 들여다보고 보듬어주는 일이었다.
아팠고, 때로는 공황 발작이 찾아와 글을 중단해야만 했다.
그러나 한 편 한 편 글이 쌓여갈수록, 부끄러움으로만 가득했던 나의 과거가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실패는 더 이상 숨겨야 할 흉터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일부였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재료였다.
나의 '나쁜 친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병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성공이라는 신기루를 좇아 내 몸과 마음을 갈아 넣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친구들은 어쩌면, '그만하면 됐다'라고, '이제는 너 자신을 돌보라'고
내게 비상 신호를 보내준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이 나쁜 친구들과 함께 사는 법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들을 없애려 싸우는 대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다.
피곤하면 쉬고, 아프면 약을 먹는다. 그리고 글을 쓴다.
나의 실패와 상처가, 나와 같은 또 다른 '키즈'들이
잘못된 내비게이션을 따라가지 않도록 막아주는 작은 표지판이 될 수 있다면.
나의 '나쁜 친구들'과의 동행 기록이, 비슷한 아픔을 가진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의 지도는 틀렸지만, 나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나는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 대신,
내가 피와 눈물로 깨달은 것을 바탕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우리를 교묘하게 현혹하는 '성공학'과, 고통스럽지만 진정한 '자기 계발'을 나누는 것이다.
그 첫 번째 과정으로, 내가 과거 존경했지만 이제는 '위험 지역'으로 분류하는 이름들을 들여다볼 것이다.
주언규, 김미경, 박세니.
그들의 이야기가 왜 우리를 성장시키는 '자기 계발'이 아닌,
우리를 병들게 하는 '성공학'인지에 대해 2부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려 한다.
물론 그 길 위에서도 나는 ‘나쁜 친구들’ 때문에 자주 넘어지고, 실패의 기억 때문에 때로 주저앉게 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적어도 이 길의 끝이 벼랑이 아니라는 것쯤은 확실히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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