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다른 꿈을 팔기 시작했을 때

그가 다른 꿈을 팔기 시작했을 때

by 이땃쥐

나는 그가 그린 지도 위에서 길을 잃었고, 결국 벼랑 아래로 떨어졌다.

모든 것이 끝났다.

나는 사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남은 재고와 촬영 장비, 기타 비품들을 당근에 팔거나 무료 나눔을 하고, 버릴 수 있는 것들은 전부 버렸다.

자취방을 가득 채웠던 내 꿈의 잔해들을 하나씩 비워냈다.


신기하게도 후회는 남지 않았다.

오히려 후련했다.

내 모든 자본과 노력을 남김없이 쏟아부었고,

살면서 이렇게까지 악에 바쳐 깡으로 버텨가며 노력해 본 적도 없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의 3년 가까운 시간은 의미 있었다.

어쩌면, 다시는 그렇게 할 엄두가 나지 않기에 더 후련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딱 하나, 사업자등록증만은 폐업 처리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마저 없애버리면, 내 치열했던 3년 가까운 시간이 공중에서 삭제되는 기분이었다.

그 마지막 미련 하나를 남기고 나서야, 나의 시간은 비로소 멈췄다.

파산과 함께 찾아온 공황장애, 우울증, 화병,

베체트병이라는 '나쁜 친구'들은 내 일상에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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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간호학과에 입학하며 마지막 희망을 붙잡아 보았다.


하지만 내 몸은 이미 예전 같지 않았다.

그날도 나는 등교를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치고 가방을 멘 채 현관문 앞에 섰다.

바로 그때, 거대한 공황 발작이 덮쳐왔다.

나는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붙잡고 울면서 토했다.

결국 공황 발작 시에 긴급으로 먹는 처방약을 삼키고 침대에 쓰러져, 그날 수업에 가지 못했다.

그 서러운 아침에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무조건 몸을 갈아서 열심히 할 수 있는 것도 재능이구나. 나는 지금 실패자구나. 그것도 아주 값비싼 대가를 치른.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유튜브를 넘기다 익숙한 얼굴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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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을 20억에 매각한 후에 일반인으로 돌아갔을,

‘신사임당’에서 ‘주 PD’로 돌아온 그였다.

몇 년 전, 나를 벼랑 끝으로 안내했던 바로 그 내비게이션.

나는 그의 최신 영상을 클릭했다.

영상 속에서 그는 열정적으로 새로운 성공 공식을 설파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그가 더 이상 스마트스토어를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간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듯한 충격이 왔다.

그는 똑같은 표정, 똑같은 말투, 똑같은 희망적인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변한 것은 오직 ‘스마트스토어’에서 ‘유튜브’로 바뀐, 성공의 ‘아이템’ 뿐이었다.

나는 그제야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의 진짜 비즈니스는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 그 자체를 파는 일이었다.

나는 그의 성공 스토리를 산 것이 아니라,

나의 절박함을 먹고 자라는 그의 비즈니스 모델에 편입되었을 뿐이다.


뜨거운 분노 대신 차가운 깨달음이 밀려왔다.

그 차가운 깨달음 뒤에 찾아온 것은 사명감이 아니었다.

지독한 부끄러움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내 실패의 진짜 모습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누군가 물어보면, 그저 "인터넷 쇼핑몰을 했었다"라고 얼버무릴 뿐이었다.

군 휴가까지 반납하며 서울의 세미나를 쫓아다녔던 일,

월급을 쪼개 수많은 인터넷 강의를 결제했던 일들은,

사기꾼에게 속아 넘어간 어리석음의 증거 같아서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내 마음이 그 모든 것을 인정하고, 부끄러움마저 온전히 내려놓을 수 있을 때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을 위한 마지막 치유 과정일지도 모른다.

나와 같은 또 다른 ‘키즈’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잘못된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벼랑 끝에서 더 이상 누구도 좌절하지 않도록.

그래서 이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