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공식은 왜 나에게만 통하지 않는가

어머니의 눈물과 맞바꾼 처절한 실패 기록

by 이땃쥐

그날도 나는 편의점 야간 근무 중이었다.

재고 박스로 가득 찬 자취방 월세와 카드값을 생각하면 단 하루도 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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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꾸벅꾸벅 졸음을 쫓고 있을 때, 갑자기 배를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시작됐다.

허리를 펼 수조차 없었다.

당장이라도 맞은편 응급실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사장님과 급하게 교대를 해야 했기에, 고통을 견디며 기다려야만 했다.


그 시간이 지옥 같았다.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나는 카운터 밑으로 숙인 허리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죄송합니다, 제가 복통이 너무 심해서...”라고 양해를 구하고

허리를 굽힌 채로 물건을 계산해 드렸다.

손님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부끄럽고 비참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장님이 도착하고 나서야 나는 엉금엉금 기어가듯 편의점을 빠져나와 길을 건넜다.


20200611_033439_605.jpg 실제 응급실에서 찍은 사진

응급실 침대에 누워 링거를 맞는 와중에도 내 머릿속은 온통 주문 처리와 택배 생각뿐이었다.

결국 입원 권유를 받고 병실에 자리를 잡았다.

IMG_20200612_191343_871.jpg 편의점 사장님이 문병도 와주셨다.

하지만 나는 온전한 환자일 수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간호사에게 "잠시 외출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택배를 싸기 위해서였다.

병실 침대 위에서는 노트북을 펴고 고객 문의에 답을 했다.

내 몸이 보내는 비상 신호보다, 눈앞의 사업이 무너진다는 공포가 더 컸다.


며칠 후, 대장내시경 결과가 나왔다.

의사는 내시경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장에 궤양이 있는데, 모양이 좀 특이해요. 베체트병 환자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형태입니다."

그리고는 내게 첫 질문을 던졌다.

"군대 다녀오셨어요?"

희귀 난치병. 평생 안고 가야 할 병. 나는 오히려 덤덤했다.

구내염은 어릴 때부터 달고 살았고, 소화기관은 늘 좋지 않았으니까.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소식을 들으신 어머니는 서울 삼성병원에 곧장 예약을 잡으셨다.

오전 7시 출발하는 기차를 예매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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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지방에 사는 나는 6개월마다 SRT를 타고 서울(수서)로 향했다.

진료 한 번에 하루가 통째로 날아갔다.

그곳에서 만난 교수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죽을병은 아니에요. 그냥, 평생 나쁜 친구 한 명을 데리고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그 비유가 더 섬뜩하게 다가왔다.

내 삶에 평생 떨쳐낼 수 없는 불행이 동행한다는 선고처럼 들렸다.

내가 병원 복도에 앉아 그 말의 의미를 곱씹고 있을 때,

어머니는 내 앞에서 차마 소리 내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고 계셨다.


얼마 후, 보험사에서 진단금 500만 원이 나왔다.

그 돈이 통장에 들어오던 날,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아들, 힘든 거 안다. 이거 사업 자금에 보태 써라. 엄마는 우리 아들 믿는다."

어머니는 내 몸의 상처보다, 무너져가는 내 마음의 상처가 더 아프셨던 것이다.

당신의 눈물 값으로 내 꿈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어머니의 믿음과 눈물이 담보된 돈이었다.

나는 그 500만 원을 마지막 희망이라 여기며 광고비와 사입 비용에 모두 쏟아부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무관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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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공식이 나에게만 통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세상에 ‘성공 공식’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단군 이래 가장 돈 벌기 좋은 시대’라는 그의 말은,

수많은 실패자들의 무덤 위에 우연히 피어난 한 송이의 꽃, ‘생존자 편향’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나는 공식을 산 것이 아니라, 그의 성공 스토리를 샀을 뿐이었다.


내비게이션은 처음부터 틀려 있었다.

그 끝에 목적지는 없었다.

벼랑만이 있었을 뿐이다.

나는 그가 그린 지도 위에서 길을 잃은 수많은 아이들 중 한 명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