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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 백수

귤껍질 까는 게 쉽지 않다

by 평균아래

회사를 그만둔 지 반년이 다되어간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간도 얼마 남지 않은 시점. 나는 침대에서 뒹굴대고 귤을 까먹으며 취업포털사이트를 뒤적이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마흔이 된 지금까지 나는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거의 하지 못했다.

취업에 성공했던 회사는 단 한 곳을 제외하고는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입사한 회사마다 적응을 잘하지 못했다.

업무적으로도 인간관계에서도 매우 서툴렀다.

이는 학창 시절부터 예견된 바였다.


나는 유치원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남들보다 좀 어리숙했고 충동적이고 눈치가 없었다.

거기에 더해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기까지 하였으니 내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것이 당연했고 이는 사회에 나와서도 다르지않았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주변에 의례 한두명씩 존재하는 착한 친구들이 안쓰럽다며 먼저 다가와 감싸주었으나 이젠 그런 선의의 도움은 바랄 수가 없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를 챙겨주는 이는 당연히 없었다.


나의 모든 언행에는 고스란히 내 책임이 따랐고 여전히 나잇값을 못하던 나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계속 도망쳤다.

그런 일이 반복되니 자신감도 잃어갔고 마지막엔 공포를 느꼈다.

그렇게 나는 집에서 할수 있는 일을 찾아다녔다.


지금은 재택근무라는 업무형태가 많이 익숙해졌다지만 십여 년 전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들은 매우 적었고 급여가 최저시급에도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서른 중반까지도 내 월급은 백만 원 언저리였다.

당연히 경력이라 부를만한 것도 없었고 독립도 할 수없어 부모님 집에 얹혀살았다.


고맙게도 날 친구라 여겨주던 몇 안 되는 내 친구들은 멀쩡히 직장생활하다 하나둘씩 결혼하며 자신만의 새로운 가정을 꾸려나갔다.


내가 결혼이나 직장생활은 커녕 간단한 대인관계조차 제대로 유지하지 못해서 절절 매는 동안 날 제외한 모든 이들은 흔히 말하는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점점 고립되어 갔고 평범이라는 인생의 난이도가 너무도 높게 느껴졌다.


특별하지도 뛰어나지도 않다는 보통의 삶이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나에게는 너무도 어려웠다.

모두가 쉽게 한걸음을 내딛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는 서서 버티는 것 조차 힘겨웠다.


그냥 되는대로 쉬운 것만 하고 살고 싶었다. 어려운 문제는 지금 당장은 풀지 않아도 된거 같았기에 내일 풀면 될거 같았다.

그렇게 미뤘다.

하루이틀 미룬 문제들은 한 달, 한해로 넘어간다.

나는 남들이 차근히 걸어나가는 동안 홀로 주저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려 10년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죽을 때까지 정체된 채 살거라 생각하며 반쯤 체념하며 살던 나는 서른다섯이 되던 해, 백만 원 고작 받던 그 재택 아르바이트에서 마저 잘렸다!


아! 이미 바닥인 줄 알았는데 지하실이 있었구나.

정체된 삶이 이제 하다 하다 백스텝을 밟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주저앉아있던 바닥이 그냥 허허벌판인 흙바닥인줄만 알았는데 알고보니 뒤로가는 무빙워크였던것이다.

현대사회에서 풍족하고 안전한 사회인프라를 누리며 사는 사지멀쩡한 인간이 쥐꼬리만한 세금만 내는 것에대한 벌인것인가.

평균이하로 사는 삶은 사회에서도 용납받지 못하는 것일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여전히 나이에 비해 머리가 여물지 못했다.

나락으로 가는듯한 절망감이 며칠정도 날 괴롭혔지만 또다시 그냥 되는대로 쉽게 살자는 안이한 생각이 들었다.


최대한 쉽게 다른 일을 찾기 위해서 교육도 시켜주고 취직도 시켜준다는 고용센터를 방문했다.

취업까지의 커리큘럼은 나보다 더 어리고 사회경험도 적은 젊은이들을 위한 것이어서인지 다행히 내가 못 쫓아갈 난이도는 아니었다.


물론 나이는 찰 데로 찼으나 무경력에 가까운 나를 받아주는 회사가 좋은 곳일 리 없었다.

그래도 처음엔 행복했다.

20대 초년생의 중위소득보다도 한참 떨어지는 최저연봉이었지만 달에 백벌던 나에게는 만족스러운 금액이 매달 통장에 찍혔다.


무엇보다 남들처럼 단정한 옷을 입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아침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한다는 사실이 날 너무도 행복하게 만들었다.

드디어 평범의 테두리에 들어온 것이라 느꼈다.

만원 지하철도, 허구한 날 이어지는 야근도 그때는 좋았다.


직원들과 수다 떨며 점심식사를 하고 스타벅스 커피를 손에 쥐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삶.

출근룩을 고민하며 쇼핑을하고 메이크업을 배우겠다고 유튜브를 뒤져보고 키보드를 치는 손가락의 네일아트에 신경쓰는 삶.

한동안은 그런 것이 너무도 날 충만하게 했다.


남들보다 철이 덜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주 머저리는 아니었는지 20대 때보다는 사람관계가 어렵지 않았다.

나대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몇 번씩 재검토했다.


그리고 그 회사는 반년만에 망했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그렇듯이 그 비슷한 말로를 그대로 걸은 것이다.

그래도 반년 간 사회인으로 빌드업한 나는 자신 있게 새로운 회사를 찾았고 비교적 금방 재취업을 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한 번 더 직장을 옮겼고 연봉도 찔끔찔끔 올랐다.

여전히 내 나이대 중위소득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이제 나는 평범하게 월요일이 끔찍해졌다.

주말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시간을 덧없이 흘려보냈지만 그렇게 기다린 주말이 오면 침대에서 굴러다닐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화려하고 즐길 거 많은 강남권에서 일했지만 사무실은 삭막하기만 했다.

야근의 '야'자만, 회식의 '회'자한 나와도 속이 들끓었다.

회사동료들과의 대화는 팔 할이 상사 험담이었다.

이 할은 다들 가슴에 품고 다니는 사직서에 대한 얘기였다.


그렇게 나는 나름 훌륭한 '평범한 직장인'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안정적으로 오래 다닐 수 있는 회사에 들어갈 능력은 되지못했고 결국 마지막 회사도 경영악화로 인해 그만두게 되었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하루하루 놀다 보니 해가 지났고 나는 백수의 신분으로 마흔이 되었다.


이제 다시 취업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몰려온다.

신기하게도 지난 몇 년간 나는 무던히 사회생활을 해왔음에도 다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마치 서른 중반 처음 취업시장에 뛰어든 때 같다.

너무 오래 쉬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마치 이전에 사회인으로 살던 때가 모두 신기루였고 사실 나는 지금까지 단한번도 취직을하지 못했던게 아닌가 싶다.

그쪽이 훨씬 현실성이 높아보인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항상 그랬 듯이 이번에도 쉽게 가자고 결심한다.

남들 뒤꽁무니 겨우 따라가는 삶에도 나는 만족하는 인간이다.


나는 계속 귤껍질을 까며 눈으로는 취업정보를 훑어보고 있었다.

유독 껍질이 얇아서 인지 잘 까지지 않아 나는 결국 취업정보에서 눈을 떼고 한동안 귤과 씨름을 해야했다.


쉽게 살려하는데 귤껍질 까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는 생각에 조금 우울해진 일요일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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