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1일
1.
제 소식이 그리우셨는지요. 혹은 그립지는 않더라도 궁금은 하셨을까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당신을 위해 쓴다지만,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죠. 저는 원래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곤 했잖아요. 그저 당신에게 말 한마디 더 건네는게 저의 재미가 아닌가 싶어요.
2.
어제는 서울에 다녀왔어요. 오래간만에 정처 없이 걸었네요. 삼각지역에서 남영역, 숙대입구역까지 골목길을 따라 걸었어요. 걷다 보니 금세 허기가 지더라고요. 회냉면이 괜찮다는 집이 있어 들어가려다 말고 뭐가 더 있나 구경을 하다 더 깊은 골목으로 들어갔어요. 생각하고 걸었던건 아닌데 당신과 왔던 골목이더라고요. 용산 미군부대를 끼고 있어 한국식 스테이크 가게들이 늘어선 그 골목이에요. 햄, 소시지, 큰 덩어리의 안심, 등심을 철판에 한꺼번에 넣고 버터로 구워 투박한 소스에 찍어먹는 그 느낌 기억하시죠. 우린 어쩌다 그 동네에서 두 번이나 만났는지 모르겠어요. 누구에게도 특별한 연이 있는 곳은 아닌데 말이죠. 그런데도 이제 연이 생겼네요. 누구에게도 특별한 연이 있는 곳이 되었어요. 투박한 그 맛을 왠지 못 잊고 지내는 것처럼요.
3.
아내는 혼자 두고 서울에 다녀갔었냐고요? 전혀 아니에요. 아내 따라 서울에 간걸요. 결혼식에 간다고 해서 혼자 집에 남을까봐 따라나섰어요. 아내가 결혼식에 참석한 틈을 타서 열심히 걸은 셈이죠. 이쯤 되면 나오려나 싶어서 결혼식장이 있는 충무로에 갔는데 친구들과 커피 한 잔을 더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걸었어요. 남산 한옥마을을 지나 서울 인권숲을 지나 다시 충무로 쪽으로 내려왔어요. 조금은 어지러운 골목을 지나다 보니 당신과 소주 한 잔을 기울였던 닭도리탕 집이 보이네요. 그 옆의 순댓국집에서 이미 얼큰히 취하고 나서 2차로 갔던 집이었죠. 그 순댓국집 아주 인기가 좋아서 한 겨울에 1시간 넘게 벌벌 떨다가 들어갔던게 기억나시나요. 당신과의 추억에는 순댓국에 얽힌게 상당히 많은데 그 목록에서도 참 별난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그즈음이 우리가 다시 추억을 두텁게 하던 때였네요. 투명하던 10대의 후반을 응원하던 우리가 한동안을 멀리서 지켜보다가 다시 만났던 20대의 후반이었죠. 만날 수 있을 때 만나 두어야 한다는 핑계로 열심히도 놀았어요. 불과 2년 남짓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서로의 어깨를 보면 2배는 무거워져 있는 듯 쳐졌네요. 글쎄요, 순댓국집에서 다시 마주 보고 있으면 조금 힘이 될까요?
4.
오래간만에 서울에 가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고 내려오는 일정이라서 저녁 식사가 사실상 메인이벤트였거든요. 결국 전부터 궁금했던 와인바에 들러서 간단한 식사를 곁들였는데 스페인 느낌이 물씬 풍겼습니다. 내부 인테리어부터 바깥에 보이는 종묘의 담장까지 어느 한 군데도 스페인을 연상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없었어요. 그저 레몬맥주가 너무 마음에 들었을 뿐이에요. 당신도 기억하시죠? 그라나다의 한 타파스바에서 바 점원과 짧디 짧은 스페인어로 그곳의 분위기가 얼마나 좋은지 행복감을 주고받았던 그 시간이요. 분위기에 취해서 Clara(cerveza con limon) por favor!를 외쳤고, 점원은 웃으며 술을 내어준 뒤 인심 좋게 타파스를 내어왔어요. 연거푸 Muy bien! 을 외치며 다시 술잔을 기울였던 그 시간. 왁자지껄함도 없었고 스페인어 한 마디 들리지 않았지만, 지극히 한국적인 담장을 보며 다시 Muy bien!을 속으로 외쳐봤습니다. 왜냐고요? 레몬맥주가 맛있었다니까요.
5.
제 오늘은 그랬어요. 쓴 그대로요. 사실 당신이 궁금해할 부분은 따로 있을 것 같기도 해요. 결혼생활은 재밌는지, 회사 일은 힘들지 않은지.. 느낌 아시죠? 오늘은 애써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요. 언제가 다른 오늘을 맞이하고 글을 쓰게 된다면 그런 이야기들을 쓸 수도 있겠죠? 아쉽더라도 오늘은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줬다고, 내가 억지 부려서 그런거라고 이해해줘요. 아셨죠? 그럼, 조만간 다시 안부 전할게요. 잘 지내고 계시길 바랄게요. 잠시 지나간 훈풍에 너무 마음 설레어하지 마시고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