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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겔 Feb 08. 2022

멀리 있는 당신을 위해
내 오늘을 글로 씁니다.

2022년 2월 7일

 뻔한 안부부터 묻고자 합니다. 당신께서는 잘 지내셨나요. 저는 내세울만한 특출난 불행이나 불운이 잘 기억에 나지 않으니, 잘 지냈다고 해두어야겠습니다. 새로운 사람과 가정을 이루고 두번째의 설날이었습니다. 또한 길고 긴 연휴였습니다. 너무 잘 쉰 나머지 현생을 사는 법도 잊은 듯합니다. 계속해서 한량처럼 바람 쐬고 이런저런 감상들에 젖어 살면 좋겠다고 며칠간 바라다가 2월 4일 금요일마저 연가를 내고 말았습니다. 독서와 커피향, 약간의 글쓰기로 이틀을 또 보내다 오늘 아비정전을 보았습니다. 처연한 극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겨울 오후의 해가 짧고 쓸쓸하여 마음에 들었습니다.


 부쩍 꿈에 대해 생각합니다. 잠을 잘 때 꾸는 그 꿈이 아닌, 일종의 지향점이나 이상향을 뜻하는 그 꿈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계기가 있습니다. 운전하는 아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들으라기에 갑자기 떠오른 유영석의 W.H.I.T.E를 틀었습니다. 잘 모르는 노래라고 하기에 가사를 들려주겠다고 검색하여 잠깐 읊조리려는 찰나 그대로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꿈을 이루고 싶지 않느냐, 네가 어렸을 때는 모든 걸 이룰 수 있다고 믿지 않았느냐는 가사가 쓰여있었고, 그 대답이 나를 울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때는 어렸지, 천진난만했어. 그런데 이제는 나이가 들었잖아.'


 '날지 못하는 피터팬과 웬디'에게 꿈을 이뤄보라고 말하며, 간절한 소망의 힘 하나만 있다면 다 이룰 수 있다고 응원해줍니다. 아쉽지만 응원받지 못하여 울컥했습니다. 두 가지 이유 정도인 듯합니다.


  꿈이 선명했던 것을 당신이라면 알고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항상 또렷하게 꿈을 그리고 탐색하던 어린 시절을 기억합니다. 수차례 다양한 꿈이 거쳐갔지만 그때  순간들에는 반짝거리는 눈빛이 함께 했습니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꿈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고, 간절한 어떤 대상이 있지도 않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간절히 바란 적이 없나 모르겠습니다. 바랄 것이 없으니 간절할 일도 없었을 테고, 선명한 눈빛도 사라졌나 봅니다. 이래저래 최소한 평균은 되는 삶을 사는 중이라 애써 꿈을 품을 필요가 없어진 것일까요. 배가 불러서 제 마음을 허기지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정도 변명이라도 해두어야 눈물이 덜 아깝겠습니다. 


 그리고 또, 간절한 소망의 힘 하나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실이 서글펐던 것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웃어넘길 수도 있을 정도로, 이젠 당연히 잘 압니다. 당연히 잘 알게 되었기에 눈물이 났습니다. 간절함, 소망, 꿈, 진심, 열정, 정성과 같은 단어를 마음에 품고 세상을 가로질러 나아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때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어디에서도 사람이 마음먹기에 모든 것이 달렸다 생각하고 행동했습니다. 아름다웠나 봅니다. 반짝였나 봅니다. 그 시절 반짝이던 모습을 다시 돌아보니, 눈이 부시어 눈물을 흘렸습니다.


 분명 나답지가 않은데, 나답지 않다는 말을 쉽게 해낼 자신이 이젠 없습니다.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헷갈리기라도 하면 좋겠습니다. 그냥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위한다는 핑계로 나를 위해 이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예전의 나에게 이 글이 가닿으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일러줄지도 모르니까요. 다음 우리 만나는 날엔, 당신께 내 작은 실마리라도 일러드리겠습니다. 부디,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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