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831 3rd Ave에 있는 소문난 베이글 맛집 Ess-a에서 화이트 피시가 듬뿍 들어간 Melanie’s Favorite 베이글로 뿌듯한 점심을 마친 후, 51 Street에서 6번 선을 타고 맨해튼 남쪽을 향해 내려가던 중이었다.
그랜드 센트럴역에서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지하철에 올라타서는 큰 소리로 자신은 홈리스인데 어제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며 도와 달라고 하소연했다.
한낮이라 복잡하지 않아서 승객 대부분이 좌석에 앉은 상태라 구걸하는 사람의 모습을 빤히 바라볼 수 있었다.
그는 신체가 건장하고 입성도 일반인과 다르지 않아 멀쩡한 사람이 구걸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나라 오지랖 넓은 연세든 분들이 보았다면 쯧쯧쯧 사지는 멀쩡해가지고 호랑이도 때려잡을 사람이 막노동이라도 할 것이지…. 비난의 화살을 날렸을 것이다.
나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신체장애가 있어 노동이 불가능하다면 의당 지갑을 열겠지만 그에게는 그럴 마음이 조금도 내키지 않았다.
승객들은 나처럼 색안경을 쓰고 홈리스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의 호소가 끝나자 동전이나 지폐를 건네는 승객들이 보였다. 어떤 이는 바나나와 주스 팩을 건네기도 했다. 내 옆에 앉아있던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백인 여인은 무릎 위에 있던 빵이 들어있는 듯한 종이백을 통째로 홈리스에게 건네주었다.
가족을 위해서 사 오던 것일 텐데 선뜻 전부를 내주는 것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퀸즈 지역에서 브루클린으로 향하는 R선 지하철 안에서다.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청년이 자신은 뉴욕에서 차로 다섯 시간 거리의 소도시에 사는데 놀러 왔다가 현금과 크레디트 카드가 들어있는 지갑을 잃어버려 집에 돌아갈 티켓을 살 수 없다며 도와달라고 하소연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승객들 중 여러 명이 물론 적은 액수이지만 망설이지 않고 청년에게 돈을 건넸다. 마치 자신의 가족이나 친인척이 이런 난감한 일을 당한 것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솔직히 난 청년의 말을 들으며 유흥비나 오락비를 만들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맨해튼 타임스퀘어에서 퀸즈 플러싱을 향해 달리는 7번 트레인 안에서이다.
갑자기 지하철 안이 시끌시끌해졌다.
머리를 들고 보니 4 - 50대로 보이는 흑인 남성 4명이 귀에 익숙지 않은 노래를 합창하고 있었다.
길거리나 광장, 공원에서 하는 버스킹을 협소한 지하철 객실에서 하다니 어이없었다. 아마도 불 같은 태양의 열기를 피해 에어컨이 모든 것을 얼릴 것 같은 장소를 선택한 것 같았다.
그들의 목청이 얼마나 큰지 고막을 터뜨릴 것 같았다. 그야말로 참기 힘든 소음공해였다.
민폐를 끼치는 그들에게 도움은 고사하고 보상을 받아야 할 지경이었다.
그들이 빨리 지나쳐 다음 칸으로 가 주었으면 바랬으나 자신의 노래에 취한 듯 가벼운 율동까지 곁들여 노래를 부르며 느린 동작으로 자리를 이동하였는데 승객들은 도와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진 것처럼 돈을 건네주었다.
복잡하고 거칠고 24시간 잠들지 않고 숨 가쁘게 돌아가는 도시 뉴욕, 그곳에 사는 뉴요커들은 철근 콘크리트와 유리로 이루어진 건물처럼 마음이 삭막하리라 생각했었다.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사고방식으로 똘똘 뭉쳐져 남의 일엔 무관심한 마른 나뭇가지 같은 감정을 지니고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구걸하는 사람들의 진의를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이런저런 핑곗거리를 만들어 외면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