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로서 닦아, 나로서 보다
선인들은 고릿적부터
몸과 마음을 분리해 사고하지 않았다.
마음 또한 몸과 마찬가지로
기(氣)로 이루어졌다는 인식이다.
의학과 심리학 나아가 철학까지
몸과 마음은 ‘유기적’이라는 표현조차 부족할 만큼 긴밀히 얽혀 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몸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마찬가지로 마음에도 작용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앞선 글에서 차가 신체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이는 곧 그것이 정신세계에도 상당한 변화를 일으킨다는 뜻과 같다.
선(禪)을 중심으로 한 수행 문화가 이를 오래도록 증명해 왔다.
이 글에서는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차가 마음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차가 마음에 미치는 첫 번째 작용은 ‘맑음’이다.
이는 차가 지닌 성질과 깊이 맞닿아 있다.
「신농본초경」을 비롯한 여러 고서들은
차를 ‘지극히 맑고 한미한 성정’을 지녔다고 설명한다.
이 작용은 마치 안경을 닦는 일과 닮아 있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며 수많은 생각과 감정에 노출된다.
그 과정에서 마음의 렌즈엔 손때와 먼지가 쌓인다.
렌즈가 더러워지면 세상은 흐릿해진다.
판단은 흐려지고, 조화는 보이지 않는다.
차는 마음의 창을 닦는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의 상황을 보다 명확히 바라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좀 더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다.
두 번째 작용은 ‘고요함’이다.
안경에 먼지가 가득하면 시야가 흐려질 뿐 아니라
빛이 번지며 인식을 교란시킨다.
반대로 렌즈가 깨끗해지면
보이는 것은 또렷해지고, 불필요한 자극은 사라진다.
차 역시 그러하다.
마음의 창이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면,
자극을 과대평가하게 만드는 요인들이 함께 사라진다.
주변은 분명해지고, 시선은 한결 편안해진다.
눈이 녹으면 봄이 오듯,
마음의 평화는 애써 만들지 않아도 자연스레 찾아온다.
마음이 맑아지고 고요해지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혼란 속에서 외면해 왔던 대상.
그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밖을 향하기에 급급했던 시선이 여유를 얻자,
자연스레 안쪽을 비추기 시작한다.
마음의 창은 애초에 밖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존재했다는 사실.
차는 그 당연한 진실을 상기시킨다.
탁한 환경일수록 안경은 쉽게 더러워진다.
과잉과 착오가 일상이 된 현대사회 또한 마찬가지다.
그럴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마음의 창을 닦아야 한다.
안경에는 안경닦이가 있지만,
마음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수많은 답이 가능하겠지만
이 글에서는 조심스레 ‘차 한 잔’을 권하고 싶다.
다선일여(茶禪一如)라는 말이 괜히 전해졌겠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차는
당신을 닦아줄 은은하고도 분명한 향을 피워내고 있다.